비워야 채우지
36살. 내 나이가 부담스러웠다.
이별 후 미래 남편감을 찾아 헤매는 내모습이 안쓰러우면서 대견했다.
비가 오는 날, 한 남자를 만났다.
180이 넘는 키에 훈훈한 외모, 나를 귀여워해주는 모습. 심지어 종교도 같았다.
부산 사람이랬는데 사투리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보통의 남자들과 달랐다.
3개월은 만나야 사귈 수 있다던 그는, 나의 승부욕을 제대로 자극했다.
그리고 2022년 10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사귀지 않은 채로 만남을 지속했다.
남자는 마음이 없는 여자에게 돈과 시간을 쏟지 않는다.
그는 서울 동부에서 서부까지 매번 차로 데려다주었다.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번 운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믿었다.
3개월이 되어도 이렇다 할 얘기가 없어 그의 마음을 물었다.
"나 얼마나 좋아?"
"글쎄.."
"뭐라고? 그럼 대체 왜 계속 만나?"
그는 날 좋아하는 지 잘 모르겠어서 계속 만나는 거라 했다.
그와 만나기 며칠 전, 4번의 만남 후 내게 고백했던 분이 있었다. 나에게 잘해주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의 카톡 답장, 마음에 걸리는 집안 환경,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성으로 끌리지 않는 무언가 때문에 계속 만나던 거였는데 그의 고백으로 그 관계가 종료되었었다.
근데 내가 똑같이 당했다.
훈훈하고 멋졌던 그가 더이상 멋져 보이지 않았다. 이기적이라 생각했고 재수 없었다.
난 나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했고 차에서 내리며 관계를 종료했다.
자이가르닉 효과.
미완성 효과라고도 불리는 자이가르닉 효과가 떠올랐다.
소개팅을 아무리 해도 사귀지 못하고 끝난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었다.
무려 3개월이었다.
3개월간 썸만 타다 끝난 그 남자를 잊지 못해 하면 안될 행동을 해버렸다.
그때의 난 충동적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소개팅 후 집에 가는 길에 연락을 해버렸다.
그는 내 연락을 다 받아주었고, "우리 언제 얼굴 봐?"라며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리고 몇번의 만남을 더 가졌다.
연인은 아니었지만 연인처럼 멀리 놀러도 갔고, 페스티벌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둘의 관계가 끊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있었던 일을 차마 이 지면에 다 적을 순 없다는게 아쉽다. 그가 처음 나와 헤어지고 일주일 뒤, 다른 여자와 인생네컷 사진을 찍은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나또한 그 사람만 바라보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결과적으로 난 결국 6개월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또 6개월의 공백기를 가졌다.
쉼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