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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6 [,]

비워야 채우지

by 여백

시간은 참 빨랐다.

분명 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긴지 얼마 안됐던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준비를 미리 못해서인지 결혼식 날짜를 어쩔 수 없이 12월 24일로 잡았다고 했다.

이래서 결혼할 사람이면 만나면서 준비하고 만난지 1년째에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하나보다.


두 명 중에 한명과 몇번 더 만났다.

사실 나머지 한 명은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복기가 아예 되지 않는걸 보면 정말 많이 만나긴 했나보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는 요즘 여자들이 좋아하는 순둥한 인상이었고 옷도 깔끔하게 잘 입고 다녔다.

아직도 기억난다. 나를 처음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하던 그 모습이.

그리고 카페로 갔을 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길고, 정리가 안됐다.

'이게 뭐지..? 사회생활하는 사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또래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르신들이 쓰는 말투, 억양이 느껴졌다. 설명하기 조금 어렵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 사람은 착한 것 같으니 조금 더 만나보자 라고 생각했다.

세번째 만남에서는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던졌다. 마치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인지 면접을 보는 것처럼.


그는 보통의 남자들과 사뭇 달랐다.

집안에 자동차가 있던 적이 없다고 한다.

어머니가 운전을 하신적은 있었는데 접촉 사고가 나면서 팔았다고 한다.

그럼 가족 여행은 어떻게 다니냐는 말에 버스, ktx 등을 이용했다고 했다. 그는 본인과 가족들이 운전을 안하는 것 자체가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며칠 후, 크리스마스 이브날 결혼식에 혼자 갈 것이 걱정됐다.

그에게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고, 그는 단번에 오케이를 외쳤다.

이브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많이 왔다.

언니와 그의 예비남편, 부모님들께서 덕을 많이 쌓았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은 감동적이었다. 신랑신부의 부모님들께서 노래와 연주로 축가를 불러주시는데 눈물이 났다. 언니는 분명 연습과정에서 그 곡을 천번은 들었다고 했는데, 막상 당일에 부르니 울컥했나보다. 신부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자리에 앉아있던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내 옆에 섰다.

"사진 같이 찍어도 되죠?"

"아...네네 괜찮아요"


결혼식 후 그가 짜놓은 코스대로 움직였다.

그날은 눈이 정말 많이 왔고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아 살짝 두려웠다.

예약해 둔 카페에 갔는데 그곳은 특이하게도 흑백사진을 찍어주는 곳이라고 했다.

설마했는데, 그는 자리만 예약한 것이 아니라 사진도 예약을 했었다.


난 그때까지 흑백사진을 찍어본적이 없었다. 굉장히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밀폐된 공간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리모콘을 누르며 사진을 찍는데, 이게 맞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나와 기분이 좋았다.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보는데, 그는 나와 더 알아가고 싶다고 했다.


"말 놓아도 되죠?"

"아니요. 제가 놓고 싶을 때 놓을거예요"


그는 말 놓는 것을 거절당했고 우린 사귀기로 했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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