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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5 [,]

비워야 채우지

by 여백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서 기억을 복기하기 어려웠다.

한창 소개팅을 많이 하던 시절에, 그리고 사귀지 못한 그 사람과의 만남 후 사소한 이야기까지 전부 나누었던 언니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언니가 정말 대단하다. 아무리 본인이 힘들 때가 오버랩되어서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해도, 쏟아내듯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람과 연을 이어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시절 기억을 복기하기 위해 그 언니와의 카톡 대화창을 살펴보았다.

연락만 하고 만나기 전에 파투 난 사람부터, 즉 0번, 1번, 2번, 6번 등 만남 횟수도 다양했고 직업도 각양각색이었다.


대화 중 6번 만났던 사람이 눈에 띄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고, 사진상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유려하게 흐르는 어조와 텐션 높은 말투가 나에겐 여성스러움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본인이 이전에 소개팅했던 분과 어떻게 끝났는지까지 너무 사소하게 다 이야기해 줬다. 난 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을 알아보려 했다.


만난 다음날이었다.

주선자가 만남 후기를 물어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남자분에게도 만남 후기를 물어 내게 전해 주었다.

주선자의 말에 의하면, 그분은 내가 마음에 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이 얘기 저 얘기를 다 한 것이었고, 본인은 더 만나고 싶으나 상대의 마음을 모르겠다 했단다.


주선자는 내가 기분 나빴던 포인트를 명료하게 남자에게 전달하였고, 내게 한 번만 더 만나볼 것을 권유하였다.


그렇게 6번의 만남까지 가졌고, 그는 사귀지도 않는데 나에게 편지도 써주고 여행 후 선물도 가져다줬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정말 간사하다.

편지는 너무도 감성적이라 30대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선물도 자잘한 것들이 많아 그 사람이 쪼잔해 보이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돌릴 수 없는 것이더라.

결국 정리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사람을 만나보았고,

감사하게도 두 명 다 애프터를 청해주었다.


'카톡'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던 언니에게 모바일 청첩장이 왔다.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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