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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7 [,]

비워야채우지

by 여백

처음 만났을 때 느꼈지만 그는 범상치 않았다.

첫 만남에서 식사를 하고 카페로 2차를 갔었는데,

말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자니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뭔가 정돈되지 않고 장황한, 핵심이 무엇인지 알쏭달쏭한 문장에 들으면서도 오잉?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직업상 주변에 말을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그의 장황한 문장이 계속 거슬렸다. 말이 그냥 길어도 듣기 힘든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착한 것 같았다.

옷도 본인에게 잘 어울리게끔 센스있고 깔끔하게 잘 입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굉장히 잘했다.

예쁜 꽃다발도 잘 사주고, 내가 아파하면 약도 종류별로 챙겨줬었다. 심지어 소모품이지만 운동기구도 사다 주는 정성을 보였다.


그는 완벽한 J형이라 모든 데이트에 코스를 짜왔고, 난 그에 따르기만 하면 됐었다.

너무 편했다.

그런데 편하기만 했다.


새로운 것, 신기한 것, 참 좋았지만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한 번은 카페에서 이야기하는데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놀란적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한 시간밖에 안 지났네요?"

"그러게요 진짜 신기하네요"

사실 이게 긍정적인 신호는 아닌데 그는 그걸 모르는 듯했다.


내가 이 사람에게 큰 마음이 없다는 걸 확실하게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이트 후 집에 갈 때마다 부모님이 놀라며 말씀하셨다.


"벌써 왔어?"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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