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오는 걸까?

d+12

by regine

당일치기로 브뤼셀에 다녀왔다.

노트북을 챙겨간 탓에 백팩을 메었는데, 그러고서 북역에 간 것도 카메라를 도둑맞고는 처음이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었다.

다행히 하루 종일 잃어버린 것 없이 잘 다녀왔고 ㅎㅎ


기차를 타서 한 시간 반 정도 갔을까, 도착지인 브뤼셀 미디 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가는 동안 바깥 풍경은 몇 번 보질 못했는데 생각보다 글이 잘 써진 탓이었겠다. 가끔 바라본 창 밖엔 넓은 수평선과 풀, 나무가 있었다.

서울에 살면서는 자연이 주는 수평선을 볼 일이 자주 없다. 보려면 바다 쪽으로 가야 하니까 ㅎㅎ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도 그 나름의 느낌을 준다만, 눈앞의 푸른 수평선들은 또 다른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멍 때리며 바라보기 좋은 건 내겐 후자다.


기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공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파리보다 확실히 추웠다. 역에는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와 영어. 총 네 개의 언어로 환영한다는 인사가 적혀있었다.


커피를 한 잔 하기 위해 삼십여분을 걸어갔다.

강변을 따라 걷는데, 파리의 건물들이 그새 익숙해진 걸까, 뭔가 다른 게 확실한데 그게 이국적인 느낌을 줬다.

우선 파리의 건물들보다 선이 간결했다. 그래서일까 머릿속 ‘유럽 건물’의 스테레오 타입에 들어맞지 않았어서 그게 또 특이했다.

빈틈없이 붙어있는데 중간중간 장식적인 데코가 들어간 건물이 있었고, 그다지 이른 시간도 아니었는데 인적이 드물었다.

큰 역 근처는 동네가 다 왜 이러지?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카페에 다다르니 또 다른 느낌.


커피를 마시며 글을 마무리하기로 했기에 바 자리에 H와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오늘의 커피를 시켰고, 나는 더블 에스프레소와 사과쥬스를 시켰다. (오렌지 쥬스가 없었다.. 사과쥬스는 병쥬스였고..)

H는 아보카도 토스트도 함께 시켰고, 오늘의 커피를 리필했다. 그러다 라떼를 추가했고 나도 카푸치노로 커피를 한 잔 더 마셨다.


카페에는 아마 세 시간이 좀 안되게 머물러 있었던 것 같은데 커피도 느리게 나왔지만 특히 토스트는 굉장히 느리게 나왔던 것도 한몫했지.

그리 느리게 나오는 줄 몰랐는데, 받아보니 처음 시켰던 커피가 꽤 줄어 있길래 그제야 알았다. 물론 우리 테이블만 속도가 느린 건 아니었다.

혼자 온 사람들은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느라, 여럿이서 온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에 더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하러 카페에 왔을 건데, 그런 목적은 잊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주말도 아니고 평일, 게다가 이른 점심시간 ~ 두시 즈음이었는데 말이지.


바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주문을 하는 사람이나 커피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관찰해볼 수도 있었는데 급해 보이는 사람도, 재촉하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커피도 토스트도 꽤 맛있는 편이었기에 내부는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계산을 하는 앞쪽에 바로 앉은 사람도 있었고, 아예 빈 공간에 서있는 사람, 합석을 한 사람 등등.


커피에 대해 잘 아는 H는 내게 그들이 벽에 암호처럼 적어 놓은 표시들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들려주는 이야기의 어떤 건 알겠고 어떤 건 모르겠는데 그래도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표현이 정말 무슨 말인지 알겠는 ㅎㅎ 이런 상황들은 생각보다 자주 오진 않지만, 만나게 되면 그럴 때마다 재밌고 반갑다.


그렇게 각자 두 잔의 커피를 마시고서야 카페를 나왔다. 나와서 카페를 한번 더 바라봤다. 카페 내부는 여전히 붐볐다만 사람 많은 곳을 안 좋아하는 내가 얼굴을 찌푸릴 만큼은 아녔다. 노랫소리도 나오고 커피 머신 소리도 있고, 또 사람들이 각자 내는 소음들이 있을 텐데, 그게 카페의 규모에 딱 적당했다고나 할까. 공간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계산되지 않은 상황이 적당히 맞물려 어울리는 게 묘했다.

서울에서 종종 들르는 좋아하는 카페가 생각났다. 그곳은 이곳보다 천고가 낮지만 규모는 비슷한 편인데, 점심시간을 지나가거나 이른 저녁시간에 가면 공간의 분위기가 흐트러져 괜히 커피맛도 맛없게 느껴지는 걸 여러 번 느꼈었더랬다. 그래서 그 시간을 피해 가거나, 피치 못하면 테이크 아웃을 하곤 한다. 그런 그곳과 비교가 되니 그런 점들이 더 부각되어 느껴졌나 보다.


고개를 돌리니 오전과 다르게 맑게 개인 하늘이 보였다. 파리에만 있었다면 그곳은 오늘도 흐림이었을 텐데. 가뜩이나 해가 짧은 유럽의 겨울에선, 저런 하늘과 햇살이 더 귀했고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들른 갤러리.

열심히 지도를 따라갔는데, 찰나에 지도상 내 위치가 그곳을 이미 지나와있었다. 응? 지났다고? 뒤를 돌아보니 조도가 굉장히 어두운 공간이 보였다. 그곳이었다.

문을 열어 들어가니 신기하게도 안에선 그곳이 그리 어두운 공간이라 느껴지지 않았는데, 조명과 오브제들의 구성이 너무 과하지도 않고 또 너무 비어 보이지도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음악도 없었다. 우리의 발자국이 건물 내부에 몇 번 울렸을까, 위층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인사를 했고 처음 오는 거냐길래 그렇다고 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공간은 1층과 지하, 그리고 위층이었다. 우리가 충분히 1층을 둘러보도록 그는 잠시 물러서 앉았다. 그리고 지하에 내려갔다. 세 명이서 전시 공간을 빗겨 서있기엔 다소 좁았는데, 그곳에서부터 나는 질문을 했고 그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2층. 공간 규모가 제일 넓었고, 제일 뭐가 많았다. 역시나 그는 한쪽에 물러나 앉아 있었다. 또다시 질문과 대답 시간 ㅎㅎㅎ 그는 불어보단 영어로 대화를 하길 원했고, (사실 두 언어 모두 내 의사를 담기엔 내가 많이 부족했다만) 갑자기 영어를 써야 했던 나는 머리에 과부하가 찾아왔더랬다...ㅋㅋㅋㅋ 사실 불어로 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간단한 의사소통만 하며 지내고 있으니까... 그는 내 질문이 이해가 안 되면 차분하게 다시 물어보며 내용을 확인했고, 대답해주었다. 질문을 하는 입장에서 그것조차 상대가 되묻게 하고 있다니... ‘이상한 질문들을 많이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친절한 설명 고마워요 ! ’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괜찮다고, 되려 이런 질문들은 자기를 신나게 한다 했다.


‘by the way, do you want some coffee?’

‘yes, please !’


커피 머신이 아마 지하에 있었는지 그가 자기 것까지 해서 잔을 세 개 들고 올라오는 데에는 시간이 다소 걸렸다.

그를 기다리며 백팩을 바닥에 내려두고, 겉옷도 벗어 두었다. 의자가 많았는데 오브제로 느껴지다 보니 함부로 건들진 못하겠어서 우두커니 서있었지.

얼마나 지났을까, 커피잔이 뜨거우니 조심하는 말과 함께 커피를 건네받았다. 우리가 오기 전에 앉아있었던 것 같은 자리에 그가 앉았고, 우리에겐 ‘원하는 곳에 편하게 앉아도 돼. 그건 전시 제품이기도 하지만, 가구니까.’라고 해서 그제야 둘러싸인 가구에 앉을 생각을 했다.

‘벨기에는 특이한 곳 같아요’ ‘맞아, 정말 이상한 도시야. 그래서 우리가(갤러리가) 있지.’

ㅎㅎㅎㅎ


그는 벨기에는 처음이냐 물었고, 어딜 가봤냐고도 물었다.

‘아침에 도착하긴 했는데 카페에 쭉 있었어요. 혹시 우리가 가 볼 만한 곳을 추천해줄 수 있나요?’


그는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묻더니 이메일 주소를 적어달라 했다.

타닥타닥. 그가 타자 치는 소리와 우리가 커피 마시는 소리로만 공간이 채워질 때쯤, 메일을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고.


메일을 열어보니 큰 카테고리들로 장소가 분류되어있고, 장소 옆에 간단한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줬던 모습 그대로가 메일에 담겨있었달까.


너무 받기만 한 것 같아 나오기 전 가방에 있던 민트 사탕을 건넸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사탕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가져온 건데 드실래요?’

마침 사탕이 먹고 싶었다며 리액션까지 훌륭하게 해주는 그와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알려준 곳 중에 지도상으로 제일 먼 곳에 가보고 싶었다. (villa empain 당첨!)

제일 멀었지만 우버를 타면 십분.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도착한 동네는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동네 같았는데, 역 주변이나 시내 브뤼셀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우버를 타고 도착한 그곳은, 그의 작은 코멘트대로 멋진 공간이었다.



건물 내부도 구경하고, 지하와 2층에 전시도 열리고 있어 예상보다 오래 머무른 탓인지, 아님 정말 해가 짧아서 그런 건지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땐 꽤 어두워져 있었다.





좋다고 하는 공간에 갔을 때 실망한 적이 있었는데, 반대로 사람들이 별로래도 내가 좋았던 곳이 있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그 내부를 채우는 사람들이 내겐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인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 부분은 상대적일 수 있는 부분이라, 똑같게 느낄 수 있을 확률이 적기도 하다 보니.. 내가 좋았던 곳이라 한들 남에게 추천을 잘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무튼 오늘 갔던 곳들은 공간의 분위기와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의 분위기, 그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을 하루에 두 곳이나 들렀다는 게 행운이었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쉽지 않은데 쉽게 만난 것 같아 괜히 브뤼셀에 정이 갔다.

하루 더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으려나 ㅎㅎ


멋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고, 사람을 찾아오게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 내부에 어떤 분위기가 맴도는지는 그 안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역할이 참 큰 것 같다. 오늘 내가 찾아간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그런 분위기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 역시도 어떤 공간을 채우고 있을 때, 찾아오는 혹은 잠깐 들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주고자 했기에 위와 같은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를테면, ‘나로 인해 이 곳에 다시 들르게 될 수 있다면’까진 아니더라도, ‘찾아온 공간 기분 좋게 느껴지길’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달까...

뭐 이런 것도 상대적일 수 있겠지. 내겐 절대적인 것보다 늘 이렇게 상대적인 게 어렵다. 상대적인 건 또 왜 이렇게 많은지 ㅎㅎ



+

기차 시간을 두 시간 남겨두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오늘 메뉴는 굴!!

주소로 찍어둔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마침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있었다.


'혹시 오늘 영업이 종료되었나요?’

‘응 식당은 닫았어. 근데 바로 뒤편에 보이는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굴과 와인을 주문할 수 있어’

' ok, merci ! '

크리스마스 마켓 메인 거리에서 원래 가게 쪽을 바라보고 서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은 손님들을 제외하고는 크게 세 개의 팀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

주문을 받는 팀, 굴을 손질하는 팀, 빈 접시와 굴 껍데기를 정리하는 팀.



세 팀에 속한 사람들 모두 밝았고 씩씩했다.ㅋㅋㅋㅋ 덕분에 추운 날씨에도 우리 역시 씩씩하게 다 먹고 나온 느낌이었다. ㅋㅋㅋㅋ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기분 좋았던 브뤼셀.


와플과 감자튀김을 못 먹었지만 아쉽지 않았던 건 다시 와볼 만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au revo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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