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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리 Dec 06. 2020

셀프웨딩 준비하기 - 본식내용구성

결혼의 모든 것을 전문가의 조언 없이 진행했던 우리는, 식 내용 구성도 우리 마음대로 했다. 그동안 여러 결혼식을 다니면서 보았기에 대략적인 진행 구조는 머릿속에 있었고, 여기에 디테일을 넣고 빼면서 우리만의 예식 내용을 구성해 나갔다. 


공통적으로 일단 예식이 시작되면, 신랑-신부 측의 어머니는 동시에 입장을 하고, 촛불을 밝히든, 케이크를 자르든 무언가를 한다. 그리고 신랑 입장, 아버지의 손을 잡은 신부 입장. 또는 신랑, 신부 동시 입장. 그렇게 입장하고 나면 주례든 누구든 혼인 서약을 진행하고, 주례가 있는 경우에는 주례사를, 주례가 없는 경우에는 축사를 읽는다. 막바지에는 축가를 듣고, 신랑 신부가 퇴장하면서 공식적인 결혼식이 끝난다. 중간에 군더더기를 제외하고 최소한의 과정만 정리해보면 이렇다. 그 사이에 이벤트를 하기도, 반지 교환식을 갖기도 하면서 사람마다 결혼식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결국 정해진 답은 없기에 우리 역시,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넣어서 내용을 짰다. 케이크 커팅이나 예물 교환 이런 건 다 빼고, 기본 진행 내용을 뼈대로 하여 우리가 보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꼭 필요하다 싶은 것만 넣어서 구성했다.


아래는 그렇게 구성한 본식 내용이다. 예식 시간은 20~30분 이내로 끝내고자 했다. 아무리 각종 이벤트가 있어도 하객에게 중요한 건 예식 후 식사일 테니, 본식 시간은 최대한 짧고 알차게 진행하고자 했다. 





1. 오프닝 영상

늦은 밤 퇴근 후에 퀭한 눈을 비비며 만들었던 영상을 오프닝에 틀었다. 별도의 신부대기실도, 예식홀과 복도의 구분 없이, 신랑/신부, 가족, 하객이 모두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다소 산만한 레스토랑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결혼식을 시작하는 처음 구성에 넣었다. 3분여의 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이내 레스토랑은 조용해졌다. 


2. 신랑-신부 어머니 동시 입장

아버지들은 축사를 읽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들께 별도의 인사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 무대 또한 셀프로 간단하게 꾸몄기에 촛불이나 케이크 같은 거한 것들은 없었지만, 두 분이 함께 걸어가서 하객들께 인사드리고 앉는 것만 해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초기 기획은 어머님들의 한복을 세트로 맞추고 싶었는데, 양가는 울산과 인천에 우리는 서울에서 각자 준비를 하다보니 쉽지 않았다. 다행히 미리 디자인을 협의하지 않은 것 치고는 분위기가 어울려서 다행이었다.


3. 신랑 입장 / 신부는 아버지와 함께 입장

신랑-신부 동시 입장도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나,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결혼시키는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내가 아빠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싶었다. 절대 아버지는 어떤 의견을 내비친 적은 없는데, 왠지 내가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셀프 웨딩을 준비하느라 너무 바빠서, 이 중요한 순간에 대해 제대로 연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결혼식 두어달 전부터 C와 같이 살고 있었고, 결혼식 전날 울산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올라와 같이 하룻밤을 잤는데도, 신부 아버지 손에서 신랑에게 나의 손이 넘어가는 이 순간에 대해! 정말 급하게 합의만 보고 지나갔던 것 같다. 집에서 아빠 손잡고 걸어보며 결혼에 대한 소회나 추억에 젖을 겨를이 없었다는 게 돌아보니 조금 아쉬웠다. 


4. 혼인 서약서 낭독

앞으로 어떻게 결혼 생활을 할지, 우리의 의지를 담아 가족과 하객 앞에서 맹세하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이미 12시가 넘어 결혼식 당일이 된 늦은 밤, 아마도 새벽 2시쯤부터 부랴부랴 안방에서 손으로 내용을 썼다.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미리 정리하고, 프린트해서 깔끔하고 뽀대나게 만들었을 텐데. 결혼식은 몇 시간 남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내용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기에 밤에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작성했다.


그래도 최대한 진심을 담았다. 우리가 스스로 하는 서약이기에 실천할 수 있는 내용들로, 실천하고자 하는 내용들로 썼다. 그 내용이 정말 실현 가능한 것인지 항목마다 서로 확인하고 동의하느라 시간도 꽤 걸렸다. 상대방이 보기에 너무 뜬구름 잡는 내용이거나, 실제로 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서로 퇴짜를 놓기도 하였다. 그렇게 연습장을 찢어 한 장씩 서로 서약서 내용을 적고 나니 새벽 4시쯤이 되었던 것 같다. 다행인 것은 나름 결혼 5년이 된 지금까지도 서로 서약한 부분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5.  신랑 아버지 / 신부 아버지 축사

약 7개월 전, 상견례 때 미리 공표한 대로 양 가 아버지의 축사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아버님과 아버지는 난감해 하시면서도 숙제(?)를 충실히 이행하셨다. 


나는 예전부터 나의 결혼식에 주례를 따로 모시고 싶지 않았다. 엄청 의미가 있는 분이라면 모르겠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고 잘 아는 분은 부모님인데 이 분들보다 더 좋은 덕담을 해줄 분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C도 나와 생각이 같았고, 그래서 우리는 뚝심있게 아버지들께 이 요청 사항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6. 축가 

이미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순간부터 축가는 정해져 있었다. 

'두 사람' 노래가 축가로 아무리 흔하다고 한들, 이 의미를 뛰어 넘을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축가는 C의 고등학교 친구 두 명이 해주기로 했다. 한 명은 기타 연주, 한 명은 노래를 부르기로 하였다. 결혼 한다는 사실을 알린 순간부터 너의 결혼식 축가는 꼭 내가 해야겠다며 찜 해놓은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축가로 성시경의 '두 사람'을 부탁하자, 친구들은 이내 고개를 저였다. 축가로 하기에는 너무 흔하지 않냐며, 다른 좋은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는 것을 말리느라 힘들었다. 결국 축가는 두 곡 부르기로 하였다. 나의 요청곡인 '두 사람'을 포함하여, 두 번째 곡은 친구들이 불러주고 싶은 곡으로 골라오기로 해, 결혼식 날 노래를 들을 때까지 우리는 무슨 노래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기타 연주가 있어 따로 MR이 필요 없어 우리는 서프라이즈로 노래를 듣게 되었다.)


7. 양가 부모님, 하객분들께 인사

결혼식이 끝나갈 때 즈음 하는 정식으로 드리는 인사이다. 우리는 무대 공간이 다소 좁았던 관계로 C가 큰 절을 올리지 못하고 인사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인사 후 양가 어른들과 포옹하며 등 두드려주는 순간은, 결혼식이 정말 이루어졌구나 하는 실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결혼이 정말 현실이라니!!!


하객분들께 인사드리는 순간 또한, 중요한 순간은 지나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남은 건 우리가 준비한 특별 이벤트와 마무리만 있을지어니.


8. 청첩장 덕담 상자 이벤트

우리의 사진이 담긴 청첩장이 버려지는 것이 싫어 기획했지만, 생각할수록 스스로가 대견했던 이벤트였다. 이렇게 결혼식 축하를 기록으로 남겨 간직할 수 있다니. 


덕담 상자는 사진전이 열리는 방에 두었다. 여유롭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나름 덕담 상자라고 이름을 붙인 유리 케이스는 사실... 어항이었다. C가 우리집에 첫 인사올 때 받아간 열대어 구피를 신혼집에서도 키우고 있었는데, 점점 그 개체가 불어나 커다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사겸사 일부러 어항을 사면서 결혼식 때 덕담 상자로 활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유리로 되어있어 무거웠던 건 함정)


9. 신랑 신부 행진

입장을 했으면, 퇴장도 해야지. 딱 여기까지 본식 내용을 구성했다. 






이 구성에 맞춰서 배경 음악도 고르고 골랐다. 분위기에 맞으면서도 너무 패키지스럽지 않게. 결혼식 BGM 음악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니까 패키지 종류별로 아주 다양하게 나왔는데, 그 안에서 나름 엄선해서 골랐다. 


그리고 이 구성들을 모두 포함한 사회자 멘트를 나름 애드립까지 포함하여 작성해서 사회자에게 전달했다. 사회는 C의 회사 동기가 보기로 했는데, 진행 경험이 많은 친구라 온갖 예상치 못한 상황이 난립할 셀프 웨딩을 맡기기에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전체를 구성하는 멘트는 내가 작성했다. 결혼 준비하며 힘들고 서러웠던 순간들 까지도 일부러 멘트에 넣었는데 그 부분까지도 잘 살려서 말해 주어 몹시 고마웠다. 


이렇게 내용 구성을 하고, 중간에 동영상을 재생한다든지, 덕담 상자를 갖다 준다든지, 어느 타이밍에 축가를 시작한다든지 등 친구들이 등장하는 순간은 미리 체크하여 도와줄 친구들에게 알렸다. 사회자 멘트와 구성 항목들을 담은 큐시트(실은 A4용지)를 잔뜩 프린트 해서 준 것이다. 그 덕분인지 이런 중요한 과정들은 무리 없이 잘 진행되었다. 오직 문제는 우리 둘이 준비한 것에서만 있었을뿐.....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일어났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본식에서 이야기하고, 이제 다음은 예식장을 어떻게 꾸몄는지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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