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톨(…?)
11월 초 보스턴의 카페에서 (막 도착해서 정신 반쯤 놓음)
C: 라떼, 티라미수... 다른 건?
- 그게 다야.
C: (카드리더기를 밀어주며) 스웨터에 그렇게 브로치 꽂은 거 멋지다. 잘 어울려. 그리고 그 브로치 너무 귀엽다. :D
- 고마워! :]
스누피 대왕, 찰리 브라운, 그리고 우드스톡이 행진하는 이 옷핀(브로치?)은 서울에서 몇 년 전에 구입한 것인데 미국(보스턴, 프라비던스)에서 달고 다녔더니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그 브로치 예쁘다, 멋지다 라는 말을 들었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피너츠가 미국인들에게 뭐랄까, 아마 우리의 둘리 같은 것, 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옷이나 장신구 같은 것으로 소소하게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영국에서는 드물다.
이런 사소한 잡담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의 영역이 다른 걸까.
11월 중순 바스 파머스 마켓에서
- 그 원두로 줘.
C: 그래. (카드리더기를 밀어주면서)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니! 어제까지 내내 비가 내렸는데 :ㅇ
- 그렇지. 이번 주는 비 밖에 기억이 안 나.
C: 맞아. 어쩜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오는지. 주말에만 이렇게 맑다니 믿을 수 없어 :ㅇ
- 반대가 아닌 게 다행이지.
C: 그러게. (계산 끝) 고마워! :D
영국인의 대화에 대한 모든 논의는, 영국인의 대화처럼, 날씨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 The weather, <Watching the English>
영국인들은 왜 날씨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가. 이 책 (Watching the English)에서 언급하듯 영국 날씨에는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 같은 거대하면서 극단적인 뭔가는 없다 (빌 브라이슨). 하지만 의외성이 있겠지(제레미 팍스만).
의외성, 이랄까 불확실함? 멀쩡하게 맑고 아름답다가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경험은 뭐, 어제 오후에도 했다. 가을, 겨울에는 코트는 방수 가공된 것으로, 후드는 필수다. 후드를 쓰고 걷다가 견딜 수 없으면 (백팩의 랩탑이 걱정된다거나) 우산을 펼친다.
<Watching the English>에서 저자는 영국인들의 날씨에 대한 대화는 날씨 그 자체에 대한 것, 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신호의 일종이라고 보고 있다. 하긴, 날씨는 가치중립적인 대화 주제다. 물론 지구온난화, 환경문제, 와 연결하면 - 대체 여기에 어떻게 다른 요소가 들어가나 싶지만, 놀랍게도 - 싸우자, 라는 상황이 될 수도 있더라만. 영국에서라면,
- 이제 비 좀 그쳤으면 좋겠다, 라던가
- 오늘 날씨는 좀 더 돌아버린 것 같아, 라던가
- 내내 비가 오더니 드디어 개었어,라고 기뻐하는 것
정도는 소소한 대화의 소재로 안전한 범위에 들어갈 것이다.
어쨌거나, 11월에 영국에 살면서 날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나...? 이때의 날씨 이야기는 다시 이 시기를 헤쳐나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함이 아닐까. 매일 가파르게 길어지는 밤 - 깜깜한 - 시간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은 구름과 하늘의 차이점을 아는가? 알고 있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것이다. 당신이 영국에 살고 있다면 저 둘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름의 가장자리는 은빛(햇빛이 새어 나오는)으로 빛나지 않는다. 날씨는 그저 비참하다 (miserable). 늘 그래 왔고 늘 그럴 것이다.
-Bloody Typical Semantic Shifts, <The Etymologicon> (*1)
그 정도는 아니야...
((*1) 이 장에서 우리는 sky, cloud, 그리고 바이킹의 슬픔(?)에 대해 알게 됩니다.)
나는 5-6월과 10-11월에 특히 잠을 잘 못 자는데, 아마 5-6월에는 낮의 길이가 급격히 늘어나서, 그리고 10-11월에는 밤의 길이가 급격히 늘어나서, 인 듯하다. 11월에는 좀 정신을 놓으면 커피를 내내 들이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당연히 잠의 질이 떨어진다. 11월 초 까지는 어두워 날씨가 축축해, 따뜻하면서 카페인이 들어간 것이 필요하다! 하며 커피며 홍차를 마셔대다가, 11월 중순이 되면 좀 안정을 되찾고 비타민 D젤리를 먹으며 하루 커피 섭취량을 줄여본다. 11월 20일쯤 되면 밤의 길이는 15시간이 넘는다. 아직 동지까지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여름 동안 낮이 그렇게 길고 화사했으니 억울할 건 없지만.
그래도 온도는 나름 온화하다. 최저 3-6도 (섭씨), 낮 최고 8-15도 정도. 그리고(?) 가을 벚꽃이 핀다.
https://brunch.co.kr/@minjbook/52
11월의 벚꽃은 봄의 벚꽃처럼 사람이 (내가) 홀릴 것 같은 느낌은 아니다. 처음 이 벚꽃을 봤을 때 (몇 년 전의 11월) 왜? 지금 벚꽃??? 하다가, 신기해서 또 찾아가서 보다가 그랬다. 보다 보면 뭔가 벚꽃 소금 절임 (다들 한번쯤 차(tea)에 넣어보고 기겁하는 그것) 같은데, 좀 더 피어나면 (그리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애틋하기도 하다.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이 든 나뭇잎과 함께 어우러진 작은, 조금 찌그러진 벚꽃은 어딘가 귀여우면서 멋있다.
비가 내린 다음날 떨어진 낙엽에 자잘한 벚꽃 잎이 섞여 있는 것도.
가을 벚꽃은 생각보다 오래 피어서, 11월이면 화사한 날, 비 오는 날, 비 온 다음날, 흐린 날 조금 돌아가긴 하지만, 아침 출근길에 들러 잠시 바라본다.
Watching the English (영국의 발견), Kate Fox, Hodder & Stoughton (2004, ebook)
The Etymologicon (걸어 다니는 영어 어원사전), Mark Forsyth, Icon Books Ltd (2011, ebook)
이 글에서 번역-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