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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Feb 24. 2022

2월 산책

스노우드롭, 크로커스, 수선화, 겨울 벚꽃(!) 그리고 헬레보어

<비밀의 화원>에서 메리가 황야(moor)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장면을 좋아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며 그저 아무것도 없이 죽은 듯했던 황야가 깨어나고 메리는 그 아름다움을 알아가며 애정을 배운다.

밤 동안 폭풍우가 지나가며 회색 안개와 구름을 걷어내었다. 바람도 차츰 가라앉아 맑게 갠 새파란 하늘이 황야 위에 높게 걸려 있었다. 메리는 하늘이 그렇게 파랗게 빛날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 <비밀의 화원> 7장.

2월은, 소란스럽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하늘은 이리저리 움직인다. 계절은 한 번에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으니,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조금씩 나아가다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한국의 2월은 한없이 겨울에 가까웠는데 - 꽃샘추위 같은 예쁜 말도 있고 - 영국에서 살면서 2월은 '이제, 드디어!' 다.

영국은 언제나 비가 오거나 언제나 흐리고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어.
- 메리 레녹스 <비밀의 화원> 7장

나는 10월이 되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해 지는 시간이 빨라지는 게 가속도가 붙으니까. 흐린 것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낮 시간이 짧은 것이 싫다. 나는 심한 근시라서 어두우면 잘 안 보인다에, 뭔가 없는 것을 봤다고 착각해서 (있는 것을 못 보거나) 흠칫하는 일까지 더해진다. 11월이 되면 가파르게 해 지는 시간이 당겨지고 (해 뜨는 시간은 늦춰지고) 12월이 되어 동지에 다다르면 그 정점을 찍는다.


그러니 2월이 되면, 아 이제 이 굴 밖으로 나갈 때가 온 거야 싶어지는 것이다. 오후 4시가 되었는데 캄캄하지 않아!


영국에 살면서 새롭게 감탄하는 것 중 하나는, 해양성 기후라는 게 굉장하다 - 는 거다. 바다의 온도가 이런 영향을 끼치는구나. 낮 길이가 이렇게나 짧아질 정도로 위도가 높은 곳인데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은 드물다. 겨울마다 시베리아의 축복을 받는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은 그저 놀라울 뿐. 이 나라의 겨울은, 비가 내내 내리고 기온은 영상에 머물 때가 많으니 녹색이 꽤나 눈에 띈다. 이끼도 많고. 저런 곳에도 이끼가 자랄 수 있구나 하고 엉뚱하게 감탄할 때도 있다.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은, 2월은 위험한 때이며, 서리 (black frost), 햇볕, 습기, 가뭄 그리고 바람으로 정원사를 위협하는 때라는 것이다. 이 가장 짧고, 혼란하고, 널 뛰는 듯 정신 사납고 어쨌든 믿을 수 없는 달은, 교묘한 재주로 모두를 압도하니 경계해 마땅하다. ...... 대체 우리 정원사들이 뭘 했다고?
- <The Gardner's Year> p. 15

이어서 카렐 씨는 2월이 그래도 봄의 시작을 알려주기는 한다며 - `나비 같은 것은 믿을 수 없다. 걔는 작년 마지막 나비다' - 봄의 징조들 중 몇 가지로 크로커스와 스노우드롭을 든다.


2월이면 낮 최고 기온이 섭씨 10도 정도가 된다. 중간에 폭풍도 오고 (올 해는 두 번 연속) 우박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리고 동네 여기저기가 서서히 깨어난다. 시작은 당연히 하얗고 댕글댕글한 스노우드롭. 그리고 크로커스. 스노우드롭이 등장하면 나는 설렌다. 선명하게 하얀 스노우드롭이 톡톡 떨어진 것처럼 피어나면 아직은 좀 칙칙한 잔디의 녹색도 밝아 보인다. 노랑, 보라, 가끔 흰색인 크로커스가 같이 어우러지면 저기만 이미 봄이다 싶게 화사하다.



...... 그 어떤 당당히 뻗은 야자수나 지식의 나무, 영광스러운 월계수도 이 하얗고 섬세한 잔 모양의 꽃이 창백한 줄기에 의지해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
- <The Gardner's Year> p. 17


그리고 이제 수선화가 가득 깨어난다.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는 아마 꿀 같은 황금빛을 머리에 지니고 옥 같은 녹색 눈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 정도는 해야 수선화가 나다! 하고 주장해도 부끄럽지 않겠지. 그래도 동쪽나라 출신은 금잔옥대(金盞玉臺)를 먼저 떠올린다. 저 잔에 따를 술이라면 역시 맑은 증류주, 아니면 색에 맞춰 미드(꿀술)?


동네 공원에 있는 벚꽃 종류는 내 막눈으로 봐도 4종류는 넘는 것 같은데

https://brunch.co.kr/@minjbook/41

그중 제일 작은, 거의 하찮게(미안...) 보이는 가냘픈 꽃을 피우는 벚나무가 있다. 얘는 가을에도 핀다. 가끔 겨울에도. 11월에 벚꽃이 피었길래...? 뭐지...? 하고 찾아봤는데 정당하게(?)  시기에 피는 벚꽃이었다. Prunus x subhirtella `Autumnalis Rosea' 장미봉오리 벚꽃(rosebud cherry) 이라고도 하던데, 꽃에다가 다른  (그것도 봉오리) 이름 붙이는   그렇지 않나. 나는 그냥 겨울 벚꽃이라고 부른다. 11월에도 피고 조금 날씨가 온화하다 싶으면 겨울에도 피고, 2월쯤이면   분홍빛을 띄는 꽃을 피운다 (가을/겨울에는   하얗다).


 온도 마음에 들어, 하면서  피우는  같아서  멋지지 않나 (나무에  이입했다).  벚꽃은 아직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는 다른 벚나무들 사이에서 홀로 화사하다.

올해 인식하기 시작한 꽃은 헬레보어(Hellebore). 크리스마스 장미,  겨울 장미, 사순절 장미라고도 한다는데, 딱히 장미랑 가까운 건 아니다. 독성이 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다가 가게에서 이름표를 보고 아 얘가 헬레보어인가, 어디서 봤는데? 했는데 동네 공원에 있었다.

...... 이 식물은 모든 부분에 다 독성을 가진다. 수액은 피부에 자극적이고, 섭취하면 입안이 화끈거리는 증상이 나타나고, 구토, 어지럼증, 신경계 우울증, 발작을 일으킨다. 고대에는 약으로 사용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에 대한 가설 중 하나로 헬레보어를 약으로 복용, 중독되었다는 것이 있다. 키르하(Kirrha) 공방전 (the first sacred war, 595 - 585 BC)에서 델포이 연합군이 키르하의 수원에 헬레보어를 풀어 키르하 시민들을 중독시켜 승리하였다고 일부 역사가들은 믿고 있다. 화학무기가 전쟁에 사용된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 <Wicked Plants> p. 118

3월이 오고 해가 더 길어지면 산책길은 더 화려해지겠지만 (제비꽃이 필 거야) 2월의 아기자기하고 어쩐지 쓸쓸하지만, 그 와중에 또 기쁜, 그런 분위기는 서서히 사라진다.


<The Secret Garden> Frances Hodgson Burnett, Digireads.com Publishing (2019)

<The Gardner’s Year> Karel Čapek, Dove edition (2017)

<Wicked Plants> Amy Stewart, Timber Press (2021)

(한없이 대충 한) 번역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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