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없이 살고 싶지만 틀을 짠다
자유로운 영혼을 타고났는데 MBTI가 J라고?
얼마 전 <MBTI vs 사주>라는 제목의 관찰예능을 봤다. 사주명리학을 공부하고 MBTI에도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꽤 구미가 당기는 조합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다.
<계획적인 J·정관 vs 유연한 P·무관성>.
참가자들에게 ‘아침 8시까지 풍선을 들고 약속 장소까지 와서 버스에 탑승하라’는 미션을 주고, 각각 어떻게 미션을 수행하는지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J이자 무관성인 나는 어떨 것 같은가?
나라면 과연 어떤 풍선을 들고 몇 시까지 도착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MBTI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나는 정말 확고한 J이다.
20년 전 고등학교 시절 처음 MBTI 검사를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J가 나왔다.
나는 지각 한 번을 한 적이 없다. 시간개념이 철저한 편이라 약속 시간 30분 전에 도착하는 게 내 원칙이다.
학업이나 일상 루틴도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그 틀에서 움직이는 타입이다.
계획이 없으면 붕 뜬 것 같이 불안하다. 즉 불확실한 것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보다는 애초에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틀을 짜 두는 게 훨씬 편하다.
MBTI에서의 J 유형은 ‘계획과 구조를 사랑하고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닌가. 그게 바로 나다.
그런데 사주명리로 보면 나는 ‘무관성’이다.
관성의 키워드는 ‘규율, 책임, 통제, 법과 규칙’이다. MBTI의 J유형에 대응되는 것이 바로 ‘관성’인 것이다. 관성은 나를 극(剋)하므로, 나 자신을 제어하고 관리해 주는 성질이다. 사주에 관성이 강한 사람은 질서와 위계를 중요시하고, 규칙이나 루틴이 있는 환경에 어렵지 않게 적응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 사주팔자에는 관성이 단 하나도 없다. 내 사주적 기질로만 보면, 나는 무관성이므로 자율성과 유연성을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관성이라면 나는 자유로운 흐름 속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나는 계획과 통제를 사랑하는 J가 된 것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나는 스스로 질서를 짠 뒤 시뮬레이션을 하고 이를 통해 실질적 결과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규칙이라면 외부의 질서라도 성실히 따르지만, 그래도 남이 세워주는 구조보다는 내가 설계한 구조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나는 ‘무관성 J’이다. 나는 내가 정한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비정형성을 띠는 것일지라도. 나는 나만의 원칙에는 늘 엄격함을 지키려 노력한다. 물론 나는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은 아니기에 적당히 부지런하고 적당히 게으르다. 그래도 한 번 시작한 일은 어떻게든 야무지게 마무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이 글의 연재 주기는 목요일로 정했다. 내게 관성은 ‘목(木)’이고, 나는 무관성이라 내 사주팔자에는 목의 기운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 부족한 것을 기준으로 세워 나만의 작은 규칙을 정하는 것. 이게 무관성인 J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매주 목요일, 나는 내게 없는 기운인 목(木)을 스르로 불러들이기로 했다.
혹시 당신도 ‘나는 왜 J인데 P 같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의 사주를 들여다보시길. 사주는 MBTI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MBTI vs 사주> 프로그램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원형 풍선 여러 개를 챙길 것이다. 지도 어플로 이동시간을 미리 보고, 거기에서 30분 더해 총 소요시간을 계산한 뒤 집을 나선다. 약속된 시각보다 일찍 도착하면 주변을 살핀 뒤 한적한 곳에서 풍선을 불고 버스에 탑승한다.
그렇게 주어진 미션을 무사히 수행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숨을 돌리겠지. 오늘도 나만의 질서로 성실히 살아낸 나 자신을 뿌듯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