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나는 '예외'가 되기로 했다
학창 시절의 나는 규칙을 충실하게 따르던 학생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했고, 해마다 학급 임원도 꼬박꼬박 맡았다.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다. 무관사주인 내가 반항기 하나 없이 무난하게 학창 시절을 지나왔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지만, 그땐 규제를 따르는 데 억압이나 불편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납득할 수 있던 게 대부분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도저히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교칙이 딱 하나 있었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는 ‘귀밑 2cm’ 두발 규정을 고수하는 학교였다.
문제는 내가 꽤 심한 곱슬머리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머리를 길게 길러 한 갈래로 묶고 다녔으니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귀밑 2cm’는 곧 단발머리로 자르라는 뜻이었고, 곱슬머리에게 단발은 형벌이나 다름없었다. 곱슬머리가 단발로 머리를 자르면 삼각김밥 같은 형태가 될 것이 뻔했고, 매일 부풀어 오른 머리를 누르느라 아침마다 고군분투해야 할 상황이 눈앞에 그러졌다.
그래도 교칙이 그렇다고 하니 별 수 없었다. 중학교 입학 전에 매직스트레이트로 머리를 펴고, 규정에 맞게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렇게 선생님들의 눈에도, 친구들이 보기에도 평범한 단발머리 여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매직’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임시로 직모가 된 머리는 풀려갔고 새로 자라나는 머리가 구불거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나는 매일 아침 10분 일찍 일어나 고데기로 머리를 폈다. 매직을 주기적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매직 직후 달라붙은 미역머리가 되는 것도 싫었고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결국엔 그냥 머리를 대충 펴고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1년 반을 아침마다 고데기로 펴고 다니던 어느 날, 2학년 여름방학 전이었다. 날씨도 덥고, 장마철이라 습기 먹어서 그런지 머리도 잘 안 펴지고, 고데기는 뜨겁고, 땀도 나고… 잠이 덜 깬 상태로 머리를 펴다가 갑자기 화가 났다. 내가 왜 아침마다 이러고 있어야 하지?
그 순간 1년 반동안 머리를 펴며 꾹꾹 눌러온 내 안의 인내심이 툭 끊어졌다. 당시 학교엔 허가를 받아 머리를 묶고 다니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예체능을 한다거나, 나처럼 머리가 심한 곱슬이라거나 하는 이유로.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아침마다 머리와의 사투를 벌이는 내게는 그 아이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나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은 본래 머리를 생활지도부 선생님에게 보여주면 머리를 길러도 된다는 허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별 탈 없이 교칙을 충실히 따르던 학생이었으니까. 마침 장마철이었다. 펴다 만 머리를 대충 수습하고 일단 학교에 갔다.
내 계획이 완벽하게 실행되려면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을 노려야 했다. 마침 절묘한 타이밍으로 며칠 뒤 폭우가 쏟아졌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내 머리는 구불거리며 마구 부풀어 올랐다. 짧은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쳐 나갔고, 나는 흡사 엉킨 사자갈기를 이고 등교해 생활지도부실로 직행했다.
“선생님, 저 머리가 원래 이래요. 머리 기를 수 있게 허가해 주세요.”
하지만 생활지도부장 선생님은 내 머리를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번 기말고사에서 ㅇㅇ과목 100점 받으면 그때 허가증 줄게.” 내 머리 상태와 시험 성적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그 뒤로 기말고사 때까지 나는 당당히 사자머리 상태로 학교에 다녔다.
당연히 모두의 시선과 관심을 받게 되었다. 어떤 선생님으로부터는 “너 머리 기르게 해달라고 시위하냐”라는 말까지 들었다. 나름의 시위가 맞았다. 하지만 정당한 시위였으므로 꿋꿋이 그러고 다녔다.
그리고 기말고사를 보게 되었다. 그 과목은 결국 89점을 받았지만 선생님은 허가증을 내어주셨고, 나는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공식적인 승인을 받아냈다.
그날 이후 나는 귀밑 2cm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여름방학이 지나가고 2학기가 될 무렵 머리는 묶일 수 있을 만큼 자라났다. 이제 더 이상 고데기를 꺼내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에 10분 더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인생에서의 첫 도발이자 그로 얻어낸 작은 승리였다. 나는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고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규칙의 틀 안에서 ‘예외 규칙’을 만들어버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게 내게 첫 번째 ‘규칙과의 결별’이 되었다.
나는 그 이후로도 여전히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으로 남았다. 그리고 웬만하면 반항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이건 아니다’ 싶은 것에는 잠시 멈춰 서서 반기를 들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곱슬거리며 부풀어 오른 머리로 교문을 들어서던 열다섯 살의 내가 지금의 내게 남겨준, 작지만 소중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