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겠어, 이미 벌어진 일인걸

행복한 예민이가 되어보려고(1)반추금지

by 히예

20대 초반에 썼던 일기에 이런 말이 적혀있다. '나는 왜 상처 난 곳을 그냥 두지 못할까. 새살이 돋으려고 딱지가 생기면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그냥 두면 될 것을, 딱지를 뜯고 또 뜯어서 새살이 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일기를 쓸 때쯤 겪었던 이별에 대해 생각하며 썼던 글이다. 그 일기를 쓴 지도 수년이 지났지만, 나의 속성 자체는 변하지 않아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일을 자꾸 되돌아보는 것은 여전하다. 예컨대 인간관계 안에서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면, 한동안 나의 미숙함에 대한 후회와 자책, 상대방에 대한 미움의 말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거다.


'그 사람은 나한테 왜 그랬던 걸까', '내가 그때 그렇게 대처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내가 상처받은 일뿐만 아니라 미숙했던 나의 말이나 행동이 떠오를 때, 일에서의 실수를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류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연달아 생각할 때도 있고,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올릴 때도 있다.


반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며 생각함'이라는 뜻이다. 좋은 일을 되풀이하고 음미하면 좋을 텐데 반추는 대개 후회, 자책, 화가 담긴 언어로 이루어진다.


과거의 일을 반추하는 이유가 뭘까. 똑같은 상처, 미숙함,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추하는 것이 정말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데 도움이 될까. 인간은 과거를 후회하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다짐하기도 하니까 일정 부분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미래는 늘 예상대로만 흘러가지 않으며, 우리는 때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에 놓인다. 끝없는 반추, 후회와 다짐이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떤 일에 대해 되돌아보는 행위, 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다짐을 위한 되돌아봄, 그 이상의 반추는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더 많이 자책하게 만들어 자기가치감에 손상을 입히고, 문제를 더 크고 심각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벌어져서 더 이상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곱씹느라 정신에너지를 허비하지 말자. 깊게 깊게 생각한다고 해서 시간이 되돌려지는 것도 아니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문제들은 가볍게 흘려보내도 괜찮다. 심지어는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일지도 모른다. 머릿속을 비우고, 조금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왜 그랬을까,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걸.' 그런 복잡하고 결론도 낼 수 없는 말을 되뇌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조금 더 가볍고 심플한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그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숨 한번 가볍게 쉬고, "후, 어쩌겠어. 이미 벌어진 일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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