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해서 다행이다

행복한 예민이가 되어보려고(3)감사일기

by 히예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몰려올 때면 감사일기를 쓴다. 처음 감사일기를 직접 써본 것은 3년 전쯤이다. 그전에도 써본 적은 있지만 심리상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써본 것이었지, 진짜 내 일상에 적용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슬픔, 화, 좌절감이 몰려오던 날 밤, 원래도 일기를 가끔 쓰는 편이라 일기장을 꺼내 힘든 마음을 다 쏟아내는데 그날은 그것만으로 시원해지지가 않았다. 힘든 감정상태에서 벗어나고는 싶은데 그 밤에 할 수 있는 게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마침 일기장은 펼친 상태였고,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감사일기를 한 번 써본 것이 시작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 쏟아낸 일기 아래쪽에 <감사일기>라고 쓰고 감사할만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많은 것들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한두 개쯤 어렵사리 떠올려서 적었다. 그리고 반복해서 눈으로 읽으면서 감사한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다음 날에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나를 위해 일기장을 다시 펼쳤다. 또 마구잡이로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고 그 밑에 감사일기를 따로 적었다. 그 전날의 감사일기 내용과 중복된 것도 있었고, 새로운 것도 있었다. 다시 반복해서 그 전날의 감사일기부터 눈으로 다시 읽으면서 감사한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5일 정도 그날 있었던 일과 정리되지 않은 감정, 생각을 적은 일기 밑에 감사일기를 따로 적는 일을 반복했다. 믿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말로 마음이 서서히 정돈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하루 쓸수록 감사한 일을 떠올리는 것도 수월해졌다. 감사일기가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알고 있는 것과 직접 경험해 본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 신기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그 뒤로 나는 상담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부모님들께 나의 경험을 곁들여 감사일기를 추천하곤 한다.


처음 감사일기를 쓰려고 하면 자신이 겪는 불행 속에서 감사한 일을 찾는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감사'를 떠올렸을 때 잘 생각이 나지 않으면 '이만하길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오늘 하루 겪었던 작은 행운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감사할 수 있는 것, 고마운 사람이나 존재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자.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불행 속에서 이만큼 버티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감사를 적어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 갑작스럽게 소나기가 내린 날이지만 퇴근시간이 되니 다행히 비가 멈췄다.(작은 행운)

2) 비 온 뒤 공기가 깨끗해졌다.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하다.(당연하다 생각했던 것)

3) 우산 안 가져가지 않았냐며 걱정하는 남편의 카톡에 감사하다.(고마운 사람)

4) 힘들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스스로에게 감사하다.(나 스스로에 대한 감사)


어떤 날에는 문장이 아니라 '맑은 공기가 좋았던 아침'과 같이 단어로만 적기도 했다. 형식이나 길이, 내용에 정해진 틀은 없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가장 편한 방식으로 쓰면 된다. 마음속으로만 감사한 일을 떠올리기보다는 귀찮더라도 글로 남기는 것을 추천한다. 기록이 남아있으면 이전에 썼던 내용까지 함께 읽으면서 긍정적인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감사일기의 효과는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불행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찾아온 불행을 완전히 소거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불행에 완전히 잡아먹히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감사한 일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은 어둠 속에서 옅게 삐져나와있는 빛을 한줄기 한줄기 모으는 일이다. 한줄기 빛만으로 나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그 빛이 하나둘씩 모이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감사하고 다행인 일들이 당신에게도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08화위로할 준비가 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