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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Apr 21. 2024

선생님 지금 좀 화가 난 것 같은데

미움받는 아이 Y 이야기

* 본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사례에 기반하여 각색된 것임을 밝힙니다.


Y는 1학년 남학생으로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호기심이 많은 학생인가 싶겠지만, 문제는 수업시간에도 학교 안을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는 것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 교실 안을 돌아다니다가 이내 교실 밖으로 나가 복도를 누비고 다니기 일쑤였다. 나 좀 보라는 듯 교실 문을 쾅쾅 닫고는 복도를 뛰어다니다가 곧 교실로 들어와 친구들 책상 사이를 한 번 훑고는 또 문을 쾅 닫고 복도로 향했다. 그야말로 정신이 쏙 빠지게 산만하고 행동조절이 되지 않는 아이였다. 한 번은 점심시간에 몰래 학교 밖으로 나가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도 했다. 다행히 학교 근처 육교에서 발견되어 무사 귀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Y와 상담실에서 처음 만났던 날 Y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상담실을 탐색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자극에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Y는 놀이하기를 좋아했다. 피규어를 가지고 상상 속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하고, 모래놀이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Y는 제법 상담실을 좋아했지만, 한 번씩 나를 시험해보려고 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상담실에 있는 배 모양 피규어를 발목 높이까지 들었다가 떨어뜨리고는 나를 쳐다봤다. 처음에는 어떤 놀이를 하고 싶은 것인가, 생각했는데 Y는 곧 높이를 조금씩 높여 떨어뜨리고 나를 쳐다보는 행동을 반복했다. 피규어를 떨어뜨리기 위해 떨어뜨린다기보다, 내 반응을 보기 위해 피규어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마치 '이렇게 하면 화가 나죠? 선생님도 화낼 거죠?'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부정적인 대인관계 경험이 대부분인 아이들 중에 이런 아이들이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비난과 질책을 이끌어낼 만한 행동을 하고는, '이것 봐, 역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한다니까.'라고 생각해 버리는 아이들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을 상대방에게 투사하여 상대방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그러면서 무의식적인 만족감을 얻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미움받는 현실은 고통스럽기도 하겠지만,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관계 양상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Y는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고 다닐뿐더러, 주변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Y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러웠다. '사고뭉치, 학년이 가면 갈수록 행동문제가 더 심해질 아이, 골칫덩이'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담실에서의 나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Y가 원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Y의 무의식적인 의도에 넘어가주는 꼴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Y가 상담실에 있는 놀잇감들을 험하게 대할 때 Y의 행동에 대해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는 점을 명확히 알려주고, 상담실 규칙을 다시 이야기해 주었다. Y가 또 같은 행동을 하면, 나도 또 이야기했다. 화내지 않았고, 다만 행동에 대한 규칙을 확고한 태도로 알려주었을 뿐이다. 


Y는 내가 침착하게 반응할수록 행동의 수위를 높였다. 어느 날은 쓰레기통에 있는 쓰레기를 상담실에 투척하고 가기도 했고, 불쾌함을 느낄만한 성적인 말을 내게 하기도 했다. 그런 순간에는 Y의 의도대로 나 역시 화가 나기도, 불쾌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상담시간에 Y가 성적인 말로 나를 당황스럽고 불쾌하게 했던 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나 Y는 성공했다는 표정으로 "선생님 지금 좀 화가 난 것 같은데"라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난 그 순간 폭발하지 않았고, 솔직히 Y의 행동으로 불쾌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표현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Y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으려 했고 Y도 행동 수위 높이기를 곧 그만두었다. 정해진 상담시간이 끝나면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하던 것들을 정리했다. 상담실에서의 변화가 일상으로까지 번져가기 위해서는 가정에서의 변화가 필요했다. 상담자가 했듯이 양육자가 Y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고 되도록 침착하고 건강한 반응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Y의 양육자는 내게 '애 키우는 현실을 모른다, 그 상황에서 침착하게 한다는 게 쉬운 줄 아느냐,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한다'라고 비난 섞인 말을 했다. 아이의 문제행동에 침착하게 대응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내가 어찌 모를까.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었다. 



* 나의 성찰

양육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무엇일지 늘 고민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정,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인 부모와의 관계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결국 다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걸 흔히 봐왔다. 무력감과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사진: UnsplashXia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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