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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May 11. 2024

그래요? 제가 잘한다고요?

느린 학습자 A 이야기

* 본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사례에 기반하여 각색된 것임을 밝힙니다.


지능은 심리상담 예후의 중요한 예측요인이며, 아동을 이해할 때 중요한 특성이다. 그럼에도 간과하기 쉬운 특성이기도 하다. 특히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들의 경우, 부모가 알아차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친구관계를 어려워하고,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자녀를 보면서 지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계선 지능은 표준화 지능검사 상 IQ 71-84 사이에 속하며, 적응능력 일부에 손상이 있지만 그 정도가 IQ 70 이하의 지적장애에서 보이는 것처럼 심하지 않은 수준을 의미한다. 전체인구의 약 10% 수준으로 생각보다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교실 이탈 문제로 상담실에 의뢰된 A는 4학년 여학생이었다. 상담실에 의뢰되기 전에도 나는 A를 복도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분명 수업시간이었는데, 복도를 배회하고 있는 A를 보고 의아해서 물어보니 한 번은 보건실에 가는 길이라고 했고, 한 번은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나 보건실에 가는 길이라고 했던 날 A가 향하던 방향은 보건실이 있는 방향이 아니었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던 날 A가 있던 곳은 A의 교실이 있던 층도 아니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수업시간이니 어서 교실로 돌아가도록 하자 A는 대답도 없이 방향을 틀어 교실로 향했다.


상담실에서 만난 A는 작은 거짓말을 자주 했다. 거짓말은 주로 자신의 곤란함을 가리기 위함이거나 자신을 좋은 쪽으로 꾸미기 위함이었다. A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앞뒤 맥락이 달라지고, 사건의 순서가 달라지는 등 어딘가 허술한 이야기들을 했기 때문이다. 말이 조금만 길어지면 영혼이 빠져나가는 표정이 눈에 훤히 보였다. 학업성취가 좋지 않았고, 또래관계도 좋지 않았다.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미숙했고, 그러다 보니 엉뚱한 반응을 자주 하게 되니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했다. 순간 버럭하는 일도 많아서 또래와 갈등이 일어나는 일도 잦았다.  


A와의 상담시간에는 A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많았다. 집중 시간이 짧은 A와 40분 동안 언어로만 상담을 하는 것보다 그림을 중간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A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제법 소질도 있었다. 그러나 A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비해서 자기 그림에 대한 자신감이 적었고, 자신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았다. A는 색감을 쓰는 방식이 자유로웠고, 색을 칠하는 방식도 전형적이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A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A의 자유로운 방식이 좋았다. A에게 그림 그리는 방식에 대해 칭찬을 해주면 A는 "그래요? 제가 잘한다고요?"라고 했다.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처럼 의아해했고, 어색해하는 반응이었다. 그림은 A가 가진 큰 자원이었고, 그것을 A도 알게 되기를, 자랑스러워하기를 바랐다.  


상담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A의 양육자에게 A의 종합심리평가를 권유했다. 양육자 동의 하에 진행한 종합심리평가에서 A가 경계선 지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능을 포함한 종합적인 결과를 토대로 특수학급에도 들어가게 되었고, A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게도 되었다. 그 후 1년가량 특수교육과 상담을 병행했다. 상담에서는 A가 이해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사회적 상황들의 맥락을 하나하나 나눠서 이야기 나누었다. 다음번에 같은 상황이 오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좋을지 하나씩 이야기 나누고, 연습하고, 과제를 내주었다. 과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또 반복했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들을 '느린 학습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느린'학습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아이들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알려주고, 꾸준히 반복하고 연습한다면 적응해 나갈 수 있다. 물론 일반적인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 이상의 인내심과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변 어른들의 노고가 동반되어야 함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전히 A가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또래에 비해 학업 성취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래도 이제 수업시간에 복도를 배회하는 A를 만나는 일은 없다. 또래에게 거부당하던 아이가 얼마 전에는 점심시간에 친구 한 명과 함께 상담실을 찾았다. 점심시간에 친구와 같이 놀러 온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느리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A는 그렇게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사진: UnsplashPascal van de Ve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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