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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May 21. 2024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게 불안해요

번외) 불안 수준이 높은 양육자분들께

* 본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사례에 기반하여 각색된 것임을 밝힙니다.


내가 만나는 어린이 내담자 곁에는 늘 아이와 함께 하는 어른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양육자들이다. 언젠가부터 되도록 부모 대신 양육자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꼭 엄마나 아빠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조부, 조모, 또는 친척어른, 시설 선생님 등 다양한 분들의 사랑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 


호칭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어린이 내담자들 이야기 번외로 양육자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해보려 한다. 아이들만큼이나 자주 소통하게 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자주 만나는 유형 중 하나는 불안이 높은 분들이다. 대개 자녀를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자녀가 통제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녀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자녀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는 사례를 자주 보았다. 


불안은 전염되기 쉽다. 아이에게 중요한 타자인 가족, 그중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의 불안은 더더욱이 아이에게로 옮겨가기 쉽다. 불안한 양육자는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아이를 통제하는 행동을 택한다. 불안한 양육자는 아이가 자신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안심한다. 아이의 실패와 좌절을 가만히 지켜본다는 것은 불안한 양육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인듯하다. 


얼마 전 만난 어머님 한 분도 불안이 높은 분이었다.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아이가 등교를 거부해서 걱정을 많이 하셨던 분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호기심도 많고 활동적인 아이였는데, 혹여 다치지 않을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못하게 하는 것이 많았다고 했다.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어머님이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실패하거나 좌절했을 때 스스로 다시 일어날 때까지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게 어렵다고 했다. 


양육자가 자신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아이를 통제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제한된다. 자율성을 발휘할 기회를 잃는다는 뜻이다. 즉, 양육자가 아이에 대한 통제력을 높일수록 반대로 아이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다. 내 인생을 내가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될 때, 인간은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무력해진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진다. 이렇게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로 이어진다. 


높은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 타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내가 조수석에 있을 때와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 언제가 더 불안할까? 내가 운전대를 잡을 수 없는 조수석에 있을 때 더 불안해진다. 같은 속도라도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는 공포가 덜하다. 속도를 높이는 내 결정이 나의 통제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양육자의 강한 통제 하에 잘 관리된 아이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유능감이 낮은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 아이들은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기 어려워하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서도 잘 믿지 못한다. 늘 자기 대신 결정하고 선택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양육자가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양육자의 가장 큰 숙제는 아이를 조금 내버려 두는 것이다. 방치하라는 의미가 아니니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아이가 스스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어려워할 때 대신 해주는 것은 오히려 쉽다.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 될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이 어렵다. 


양육자도 사람이기에 불안한 마음을 한 순간에 느긋하게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대개 관성대로 움직이곤 하니까 말이다. 불안한 양육자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아이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불안이 머리를 내밀곤 할 것이다. 그럴 때 의식적으로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시기를 바란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별거 아닌 일인데도 자꾸 아이에게 간섭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아, 내가 지금 불안해서 이러는구나'라고 자각하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 되지 않아도 괜찮다. 처음엔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른이라고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오늘 실패했더라도 내일 또 시도해보면 된다. 다시 시도하고, 또 다시 시도하는 과정이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불안이 아닌 다른 마음으로 아이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리라 생각한다. 글을 쓰다보니 이래서 '아이가 부모를 성장시킨다'는 말이 있나보다싶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일 많은 분들께 응원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사진: UnsplashMelissa Ask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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