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을 찾는 학생들 중에는 일상을 영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 적응적인 학생들도 있다. 점심시간에 상담실을 개방해 두는 편인데, 그때마다 와서 잠시 쉬고 가기도 하고 구비된 보드게임을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놀다가 가기도 한다. 점심시간에 누구든지 와서 상담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개방하는 이유는 상담실의 문턱을 낮추기 위함이다. 학교 내 상담실이 잘못하거나 문제 있는 학생들만 가는 곳이 아니라, 누구든지 쉬었다 갈 수 있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다.
그렇게 상담실 문턱이 낮아지면 어떤 아이들은 상담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직접 작성한 개인상담 신청서를 가지고 온다. 일상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음 한편에 크고 작은 고민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학교생활도 잘하고, 친구관계도 좋고, 겉보기에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도 자기만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A는 6학년 여학생으로 학급 반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상담실에 찾아왔다. 학급 반장으로서 담임선생님을 돕는 역할을 하는데, 그중에서 떠드는 학생 이름을 적는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반장으로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는 일이 종종 있다는 이야기였다. 반장인 A가 보기에는 이름을 적을만한 일이었는데, 친구들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말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A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반장으로서 열심히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C는 6학년 남학생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상담실에 찾아왔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어떤 일을 자신의 진로로 정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환경운동가도 되고 싶고, 로봇공학자도 되고 싶고, 검사도 되고 싶고, 어플 개발자도 되고 싶다고 했다. 이런저런 일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호기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다 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 자신의 길을 하나로 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연이었다.
아이들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나는 그런 아이들이 참 아이답게 귀여워서 속으로 웃음이 실실 나기도 한다. 학교와 일상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아이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 나이대 겪을만한 일, 겪을만한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할 법한 고민들을 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기특하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맘때쯤 할 법한 고민을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애쓰고, 제 발로 상담실에 찾아온 아이의 자발성이 기특하다. 그리고 어린아이 어깨에 짊어지고 있기에는 무거워 보이는 고민이 아니라 제 몸에 맞게 딱 그 정도 고민만을 가지고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사진: Unsplash의Ben Mull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