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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예 Jun 16. 2024

아이가 아니라 제가 필요했나 봐요

번외) 상담에 의존적인 양육자

* 본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실제사례에 기반하여 각색된 것임을 밝힙니다.


"제 아이가 아니라 제가 필요했나 봐요."

초등학교 3학년 A의 양육자가 한 말이다. A 상담의 종결을 앞두고 종결 일정을 안내하기 위해 전화통화를 했다. A는 친구관계에 어려움이 있던 아이였다. 소심하기도 했고, 친구가 놀리거나 장난을 걸어올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 친구들은 A를 답답해했고, 소심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A도 스스로를 답답해했다. A와는 역할연습을 자주 했다. A가 겪었던 일을 토대로 다시 상황을 재연해 보고, 다른 반응을 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오답노트를 쓰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A가 상담실에서 연습했던 것을 실전에 적용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평소 하지 않았던 말을 일상에서 해보는 것은 누구라도 쉽지 않다. 소심한 성격의 A에게는 더욱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A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친구의 말을 처음으로 맞받아쳤던 날, 그 이후로 A는 천천히 평범한 또래 아이들 틈에 스며들어갔다. 친구들과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진 않았지만, 적어도 친구의 놀림에 아무 말도 못 했던 이전의 A와는 달랐다. 


A의 양육자는 상담 종결을 늦추고 싶어 했다. A가 상담을 그만두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하는 걱정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긴 대화를 통해 A의 양육자는 종결을 받아들였고, 아이보다 자신이 오히려 상담에 의존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A의 양육자처럼 상담을 지속하고 싶어 하는데, 결이 조금 다른 경우도 있다. B는 과잉행동과 잦은 규칙위반으로 상담에 의뢰되었다. B의 양육자와의 상담에서 양육자가 B를 훈육하는 과정에 감정만 있지, 내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B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B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기는 하지만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내용이 빠져있었다. 


게다가 B의 양육자가 화를 내는 상황은 양육자 자신이 불편해졌을 때뿐이었다. 가족여행을 가는데 B가 딴 짓을 해서 계획이 틀어졌다거나 하는, 자신과 연관되어 있는 사건에는 화를 냈다. 그런데 B의 규칙 위반으로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입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B의 양육자는 B에게 너그러웠다. 집안에서 막내였던 B를 양육자는 애지중지했다. 혼내려고 하면 마음이 약해져서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B를 상담실에 의뢰했으니, 상담실에서 알아서 해주기를 바랐다. 상담실에 아이를 보낸 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B의 양육자가 한 기대와 달리 가정에서의 어떤 변화도 없이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상담만으로 B의 행동문제가 개선되리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B의 양육자가 가진 상담에 대한 기대를 현실성 있는 수준으로 낮추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B의 양육자는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고, 상담을 보냈는데 왜 변하는 게 없냐며 불평했다. B의 양육자는 이전에도 과거에 B를 데려갔던 병원을 돌팔이라고 부르고, 외부 상담기관에 대해서도 형편없다고 평했다. 


양육자의 불평 속에 학교 상담은 마무리되었고, B의 양육자가 또 다른 기관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아마 그곳에서 이번엔 학교상담실이 형편없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 씁쓸했다. 상담실이며 병원이며 다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B의 양육자는 왜 자꾸 기관을 바꿔가며 상담실을 찾을까. 양육자가 직접 아이의 행동문제에 직면하고 훈육하기보다는, 기관에 맡기는 것이 손쉽기 때문이다. 양육자로서 뭔가 역할을 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말이다.   


A와 B 양육자 사례는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상담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이가 아니라 양육자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 때다. 

'내가 왜 아이 상담 그만두는 게 불안하지? 어떤 게 가장 걱정되지? 아이가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뭘 해야 하지?' 

'나는 왜 상담에 불만족하면서도 상담을 계속하려고 하지? 나는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지? 나는 부모 역할 중에 어떤 게 가장 어렵지?'


상담에 대한 기대를 현실적으로 갖도록 하고, 양육자가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상담의 효과를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양육자를 상담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고민스럽다.   




사진: UnsplashArtur Aldyrkha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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