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젊었을 때는 매일 뭔가 이벤트가 있어야 했다. 친구와의 약속, 쇼핑, 영화 보기, 등 나의 에너지는 밖으로 향했다. 주말에도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았다. 무료하기도 했고, 혼자 집에 있으면 세상으로부터 나 혼자 소외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나는 더 이상 나의 시간을 나의 의지대로 쓸 수 없었다. 일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은 아이를 위해서 썼다. 외출을 할 때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목적지가 정해졌고, 식사, 여행 심지어 잠자는 시간까지도 아이에게 맞췄다. 그 시절 나의 에너지는 일방적으로 아이를 향해 흘렀다. 나의 시간은 아이의 시간 속으로 휘몰아치듯 빨려 들어갔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아닌 자신만의 시간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시간 속으로 휘몰아쳐 들어가던 나의 시간은 더 이상 아이를 향해 들어가지 못하고 넘쳐서 흘러나왔다. 시간의 속도와 방향이 다시 나를 향해 돌아오기까지 나는 휘청거렸고, 나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했다. 지금에 와서야 돌이켜 보니 우울증과 무력감이 나를 압도하던 시기는 바로 그렇게 시간이 방향을 잃은 시기였던 것 같다.
지금의 나의 일상은 고요하다. 나의 에너지를 오롯이 내면으로 향할 때의 충만함을 안다. 나의 시간이 나로부터 흘러나와 아주 느리게 흘러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느낌을 인식한다. 책을 읽고, 운동하고, 글을 쓰고 나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나만의 시간이다.
20대의 홀로 서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 기대어 시끌 벌적함으로 불안감을 감추었던 시간과 30대의 나를 내려놓는 시간들은 내가 거쳐왔어야만 했던 시간이다. 강물이 상류의 좁고 가느다란 물줄기에서 시작해 폭발하듯 폭주하는 계곡과 골짜기를 지나고,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를 거쳐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폭이 넓어지며 결국에 바다에 다다르듯이. 지금에서야, 아주 조금씩, 나의 일상을 나로 살아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고고하게 흘러가는 강물과 달리 나의 일상이란 외부의 자극, 어쩔 수 없는 생계의 힘듦, 그리고 무엇보다 나란 변수에 의해서 쉽게 흔들리고 방향을 잃는다. 그렇지만 다시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도 조금씩 찾아가며 적용해보고 있다.
40년을 넘게 살고서야 이제야 겨우 다다른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고요하고 반복적인 나의 일상. 조금 더 단단하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나의 삶의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고민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아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