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평가의 함정
학원은 3개월 단위로 과목이 결정되고 다음 단계로 갈 것인지, 다시 수강할지를 결정하는 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그냥 다닌다고 해서 다음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보고 일정점수 이상으로 수료를 해야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분기 마지막 주는 상담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 우리 아이는 수학에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저희 친척조카는요~ 자사고에서 1,2등 하더니 이번에 의대에 갔거든요. 그 아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정리도 너무 잘하고 아주 똑 부러지게 잘했거든요. 그에 비해서 우리 아이는 너무 느려요.
아니 독서를 하는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단어를 찾아보면서 하루 종일 보고 있어요. 아주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니까요. "
"네 아이들마다 공부하는 방식이 다르긴 하죠.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조카분은 우리가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모범생 스타일이었나 봐요~ 그런데 어머님, 학원에 있다 보면 아이들마다 스타일이 엄청 다르거든요. 글씨도 엉망이고 장난도 많이 치는데 문제풀 때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친구들도 있고, 처음에 이해는 많이 느린 편이지만 한번 이해하고 나면 그 뒤에 응용문제들을 아주 빨리 풀어내는 학생도 있거든요. 일단 학생이 어머님과 성향이 다른 것 같은데, 이해가 좀 느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스스로 학원에 일찍 와서 질문하기도 하고, 테스트 점수도 잘 나오거든요. 성취도가 좋아요~ 그래서 다음 반 안내도 드리는 거고요. "
내가 근무하는 학원은 영재고, 과고, 자사고를 위주로 준비하는 학원이라 어느 정도 성취도가 높은 학생들이 다니는 학원임에도 상담할 때 어머님들은 아이에 대해 수학에 재능이 있지는 않은데 열심히 하는 거라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매일 보고 있으면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아이는 믿는 만큼 성장한다.
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낮게 평가해서는 안된다. 입시 현장에 있다 보면 의외의 아이가 과학고에 입학하고 엄청난 성장을 이루기도 한다. 그게 흔한 일이다. 그래서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는 것이 학원의 원칙이 될 정도다. 우리 반에서도 성적향상이 엄청 많이 된 아이들이 있는데 상담할 때 말씀드리면 대부분 좋아하시면서도 인정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전통적인 "모범생"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필기도 깔끔하고 집중력이 좋고 늘 100점 맞는 학생. 나 또한 그런 학생에 가까웠던 것 같긴 하지만 결국 난 진로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이 없었고, 특별하지 않았다. 요즘에 사회가 바라는 인재상은 모범생보다는 특별한 학생이다. 어린 나이에도 명확한 비전을 갖기를 원하고 면접에서도 야무지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공부만 잘해서 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닌 것이다.
중학생 이상이 되면 사회적 이미지와 가정에서의 이미지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밖에 나가서는 활발하고 이야기도 잘하고 하면서도 집에서는 입을 꼭 다물어 버리기도 하고 학원이나 학교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집에서는 쉬고 싶어 하고 게을러보일수도 있다. 그리고 내 아이이기에 더욱더 평가에 인색해지기 쉽다.
공부에는 많은 격려가 필요하다. 잘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원에 꾸준히 다니면 중간이상은 할 수 있다. 아이의 진로는 수학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결정이 되는데, 수학과를 지망하는 친구는 거의 없다. 수학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기초 과목이기 때문에 학원에서의 훈련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꼭 천재일 필요는 없다.
배움에는 재능을 넘어서는 끈기와 인내가 중요하고 그렇기에 응원과 격려, 특히 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인데, 너무 평가에 인색하지 않았나 이 글을 통해 한번 생각해 주신다면 이 글 또한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