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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May 22. 2020

고구마 아주머니가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전해준 말

내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로 해,


아침은 언제나 군고구마와 커피 한잔으로 시작한다. 고구마의 반도 채 먹질 못하지만 건강을 위해 뭐래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고구마로 조금씩 끼니를 때우고 있다. 어제도 어김없이 군고구마 하나를 사 먹으러 회사 식당에 내려갔다. 군고구마 하나를 달라고 하니 아주머니는 손가락 4개를 가지런히 모으신 채 일렬로 진열된 고구마 위에 손을 올리신다. 마치 의사 선생님이 손목을 진맥 하듯 식당 아주머니도 고구마를 상태를 검사하시는 것 같다.      


“오늘은 고구마 상태가 영 안 좋은데.. 영 안 좋을 것 같은데 어쩌죠?”  

   

아주머니는 고구마 상태에 대해 불안해하시면서 고구마를 내게 건네는 것조차 미안해하셨다.    

  


“오늘 고구마가 맛없을 수도 있는데.. 고구마가 혹시나 이상하면 다시 와요.”  

    

여느 때처럼 커피 한잔을 내리고 고구마를 사들고 자리에 올라와 고구마 껍질을 조금씩 벗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 눈엔 여느 때와 같이 똑같은 고구마, 똑같은 커피였다. 고구마 한입 베어 물고 커피 한입 마시니 오늘 하루 한 끼는 끝이다. 맛도, 향도, 모양도 모두 평소 때와 다름없었다. 고구마 맛이 이상하면 내려오라고 하시는데 뭐가 이상한 건지도 알기 어려웠다. 아마도 아주머니는 매일 고구마를 먹으니 어제 대비 당도가 떨어졌을까 걱정하신 모양이다. 매일같이 하루 3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지만 뭐가 다크한 맛인지, 초콜릿 맛이 나는지 분간을 못하는 내가 고구마는 뭐가 달콤한지, 시큼한지 알 길이 없다.      


맛은 평범했지만 먹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맛은 평소와 같았지만 아주머니의 지나친 걱정과 불안 탓에 혹시 상한 고구마가 아니었을까 배탈 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붉으스름한 호박 고구마는 꿀이 흘러 윤기가 났지만 상태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괜히 찜찜했다. 고구마가 아무리 맛있든, 상태가 좋든 건네는 사람이 불안해하고 자신 감 없이 고구마를 건네니 괜히 하자가 있어 보이고 결국 한두 입 정도만 오물거리고 말았다.      




문득 내 작품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순간들이 떠오른다. 재작년 예상치도 않게 그룹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CF에도 나온 작가, 해외 유학파 등 경험이 풍부한 작가분들과 함께 전시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내겐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한편으론 나 스스로가 민망한 자리이기도 했다. 어떤 작품을 전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디스플레이해야 할지도 난감했다. 이미 자리매김한 작가들의 작품을 힐끗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작아졌다.      



대망의 전시일이 다가오고 돌아가며 우린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게 되었다. 내 작품을 보여주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부족한 작품이긴 한데요.. 부족하긴 한데..”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민망해서였을까. 다른 작가들과 나도 모르게 비교가 되어 위축이 되었을까. 말끝마다 ‘부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나 자신이, 그동안 그려온 시간이, 내 작품이 함량 미달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발표를 마무리하고 한숨을 쉬는데 옆에서 과정을 지켜본 언니가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말했어. 그동안 열심히 했잖아. 자신감을 가져야지.”     


사실 이 전시를 준비한다고 주말마다 하루 8시간 이상을 그렸고 퇴근해서도 그림을 그렸고 매일같이 드로잉을 하였는데 긴장하고 불안한 발표로 준비했던 것의 반만 보여주게 된 셈이다. 확실하게 준비를 하겠다고 어떠한 약속도 잡지 않고 수행을 하듯 전시 준비를 했건만 극도의 불안, 겸손, 고민이 묻어나 오히려 자신감 없는 작가가 되어 버렸다. 겸손병에 걸린 나, 불안한 자세로 존중받아 충분할 내 작품들이 그냥 부족하고 가볍게 그려 넣은 작품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진짜 부족했던 점은 내 작품을 사랑하고 책임지겠다는 마음이었을 테다. 반드시 책임지겠다는 마음. ‘책임’의 범위는 한도 끝도 없는데 마지막까지 내 작품을 진정으로 자랑스러워하고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그게 내 작품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 물론 정말 누군가의 눈엔 한없이 부족하고 안타까울 수 있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었고 진중하게 고민하며 그린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 떳떳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내 작품이 책 표지로 나오거나 브로셔로 나오면 이제 더 이상 민망하다고 부끄러워 숨지 않는다. 그 작품 하나하나를 그릴 때마다 색감, 구도, 재질 등을 고려하며 진지하게 고민했기에 다른 사람의 평가가 어찌 되든 여의치 않는다.      



100살이 넘어서도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 이왕이면 모든 그림에 나 자신도 떳떳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갖고 그림을 그려나가고 싶다. 누군가 그림을 물어봤을 때 지나간 시간들이 수포로 돌아가도록 이야기하지 말고 그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난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애정을 담아 그렸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그림을 모두 모아 놓았을 때 그래도 꽤 괜찮은 인간이었구나. 추억이 많은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되고 싶다.     






어제 내게 고구마를 판매하셨던 아주머니께도 넌지시 말씀드려야겠다.

고구마는 아주머니 덕분에 무척 맛있었으니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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