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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May 25. 2020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지

'함께 그리기'의 위력


오랜만에 정원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햇살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정원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어질 때마다 방황을 할 때마다 한결같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햇살 같은 분이시다. 정원 선생님은 잘 지내냐는 근황과 함께 올해 가을 정도 진행되는 전시회를 제안 주셨다. 전시는 그룹전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5월 초 첫 미팅이 있을 예정인데 가능하냐는 문의를 주셨다. 참여하는 작가들은 각각 개성 있고 재미있는 분들이셨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흔쾌히 감사인사를 전하고 며칠 뒤 첫 번째 그룹전 미팅을 진행하였다.     


한때 회사 끝나고 1년 동안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던 시간이 있었다. 당시엔 그 소중함을 미처 몰랐는데 이렇게 끝나고 보니 사람들 끼지 연대가 생긴다는 점에서 참 귀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번 전시하게 된 사람들도 모두 일러스트레이션 과정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모두 현업 일러스트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신데 이렇게 ‘그룹전’ 제안으로 다 같이 만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전시의 주제와 자신들이 그리는 스타일을 하나씩 공유를 해 나갔다. 이번 전시 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우린 진지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평소에는 장난기 가득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공유할 땐 무척이나 진지해진다. 요즘 워낙 SNS로 개인 프로모션을 활발하게 하여 주로 인스타그램을 화면에 띄워 그동안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럴 때면 한결같이 성실하게 SNS를 운영한 사람들이 몹시 부러워진다. 대략적인 방향과 전시 공간, 각자의 스타일을 확인한 뒤 9월 초 정도 전시 날짜를 이야기하며 전시에 대한 큰 뼈대를 서로 합의하였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개인 작업이다. 아무리 ‘그림 그리기’, ‘일러스트레이션’이 개인 작업이라 하지만 이렇게 공동 작업이 진행될 때면 나도 모르게 성실해진다. 전시 날짜라는 마감 날짜가 주어지고 공동 전시의 특성상 나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피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책임감을 갖고 작업에 임하게 된다. 공동으로 뭔가를 같이 한다는 건 단순히 작품을 그려 전시하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때론 책임감, 소속감, 친밀감 등 그 외의 감정들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곤 한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카톡방에 오늘 그린 그림을 공유한다. 매일 차곡차곡 나의 진도를 사진 찍어 공유하고 있는데 덕분에 자칫 느슨해질 수도 있는 드로잉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물론 다들 자기 작업하느냐 별다른 반응은 없지만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과 내 작업을 공유한다는 자체만으로 꽤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 그러고 보니 ‘그림책 작업’도 매번 진행하는 ‘전시’도 누군가 함께일 때 난 좀 더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 함께 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잠시 멈추더라도 다시 곧 일어나게 된다.      


언젠가 늘 마음 한편으론 ‘내 그림’으로 상을 받고 싶다, ‘내 그림’으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 등 ‘그림’이 수단이 되어 항상 뭔가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욕심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나이가 한 두 살 먹어가니 때론 ‘그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사람들과의 진실한 연대, 공동의 힘으로 이루어가는 과정, 몰입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감정은 단순히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나의 점과 타인의 점을 이어나갈 때 아주 평범하고 사수한 것이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이 되어 재미있는 결과물이 탄생한다.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줄도 공동의 열정으로 일을 재미있게 만든다. 에너지, 긍정, 끈기가 생겨 쉽게 포기할 일도 끝까지 걸어가게 만든다.      




물론 이렇게 공동 프로젝트도 자주 해보니 오랫동안 하려면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먼저 프로젝트의 목적이 정확해야 한다. 평생, 아주 오랫동안 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를 만들면 지치기 쉽다. 8월 말까지 전시 혹은 10주 프로젝트 등 정확한 목적이 필요하다. 인원 구성 역시 중요하다. 본인이 맡은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들의 구성이 필요하다. 경험상 초반에 너무 열정이 뜨거운 사람은 초반에만 그러다 쉽게 지치는 경우가 있었다. 적당히 큰 욕심 없이 천천히 걸어간다는 느낌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참여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싶은 그림, 읽고 싶은 글이 많다. 영화 평론에 대한 것도 제대로 한번 공부하고 싶고 고전도 읽고 싶고 유튜브 영상도 만들고 싶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함께’의 힘을 알기에 공동의 힘으로 천천히 꾸준히 진행하고 싶다. 이럴 때 비슷한 동료들이 있으면 함께 하자고 제안할텐데 회사 사람들은 무겁고 가족들은 너무 가깝다.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그런 모임은 대체 어디에 이쓴 것일까? 휴, 배우고 싶은 분야, 노력하고 싶은 것에 대해 내가 한번 만들어볼까? 혹시 함께 하실 분들이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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