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며 알게 된 것들
퇴근 후 1년 동안 한결같이 그림을 그렸다. 당시 일러스트레이션 학교를 병행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수없이 이어지는 전시회와 크리틱 덕분에 가끔은 체력적으로 너무 고달팠다. 그림 그리는 과정이 좋아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 결과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때론 결과물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고 마음이 힘들기도 했다.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그 1년의 과정은 나를 뜨겁게 달구는 한 해였다. 1년의 과정 덕분에 몇 점의 포트폴리오를 쌓게 되었고 그 작품이 토대가 되어 책 표지부터 책 삽화 작업까지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대부분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알아도 굳이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친한 사람이 그림 그리는 상황을 알게 될 때면 넌지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다. 내가 전시를 한다던가 상을 받을 때면 관심 있게 질문을 드러낸다.
“그림은 요즘에도 그려요?”
“그림 협회 같은 건 돈만 주면 다 가입하는 거예요?”
가끔은 그런 관심이 고맙기도 하고 또 때론 부담스럽고 무례하다고 생각들 때도 많다. 내 감정과 무관하게 이러한 질문에서 느껴지는 생각은 ‘타인의 성공은 언제나 쉬워 보이는구나.’라는 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림 그리기’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오랫동안 그림 그려온 사람에겐 오늘도, 매일, 꾸준히 그림 그리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이들은 알지 못한다. 그저 타인의 성공이 쉬워 보일 뿐이다.
최근에 나의 신혼여행지를 주제로 그린 작품이 상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레 일러스트레이션 협회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이 사실을 동료가 알고 ‘돈만 주면 가입하는 거예요?’라고 대뜸 물어본 일이 있었다. 농담으로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내 마음속으론 그 동료와의 대화에 있어 선을 긋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추상화 그림을 보고 이런 그림이라면 나도 그리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직접 그려 걸어놓은 사람은 여태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아마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평생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단편적인 것만 보고 쉽게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 어떤 고민을 하였는지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보지 못한 채 주어진 결과로만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회사생활을 10여 년 하다 보면 타인의 성취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이 보고 그 성취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치부하는 사람도 많이 만난다. 막상 그런 사람들치고 내세울만한 무언가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별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일수록 정작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보면 그들이 쉽게 했다는 업무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나에게 그림을 그리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는다. 어차피 그 과정은 본인이 직접 뛰어들어 경험하면서 얻어야 할 과제일 뿐이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무지했을 때야말로 타인의 작업물을 쉽게 판단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는 3D로 건물 하나를 만들어 보았다. 다른 사람이 만든 3D 작업물을 볼 땐 아무것도 모르니 단순히 이 건물을 뒤로 보내고, 앞으로 빼고 등등의 코멘트를 쉽게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막상 내가 3D로 건물 하나를 만들어보니까 각도 조절하는 것조차 어려워 한숨을 푹푹 쉬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기준에서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보고 너무나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쏟아부은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내 작업은 매사 성실하게 작업을 하되 타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하지 않아야겠다고 또다시 다짐을 한다. 일이든 예술 작품이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 안 보이는 곳에서도 성실하게 작업을 해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