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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Jun 08. 2020

30대에 그림을 시작해도 될까요

나이 들어 그리는 그림이 더 다채로울 수 있어요, 



대학생 때부터 타지 생활을 시작하였다.  도시 생활은 세련되고 감각적이었지만 어쩐지 사람은 오래 묵은 사람일수록 더 포근했다. 문제는 서울 생활이 너무 바빠지면서 좀처럼 고향에 내려갈 짬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젠 고향에 새로 생긴 가게보다 서울의 가게들이 더 익숙하게 느껴질 때 즈음 우연한 계기로 매주 고정적으로 고향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잘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미술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 것이다.   

   

연령대는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고 인원은 총 6명 정도라는 정보를 들었다. 신입사원 강의는 종종 해본 경험이 있지만 나보다 연장자 그것도 무려 3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경험은 뜻밖이었다.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는 도전이기도 해서 매주 뜻밖의 모임의 리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벽마다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평일까지 회사 업무 처리를 미친 듯이 한 다음 일요일엔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고향에 꼬박꼬박 내려간다는 게 사실 무척 고된 일과였다. 하지만 회사를 벗어나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큰 캐리어에 각종 미술 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그림 자료를 챙기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한 자료를 따로 만들었다. 나보다 훨씬 연장자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무척 부담되었지만 그림 앞에선 모두가 동지가 되었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꼬장꼬장해 보이시는 할머니가 동그란 사과를 하나 그리시면 난 정말 잘 그리셨다고 칭찬을 열심히 해드렸다. 할머니는 이내 수줍어 하지면서 그다음 시간부터 보온병에 커피를 한잔 따라 내게 선물로 주신다. 나보다 약 10살 정도 더 많아 보이는 분은 아침마다 주먹밥을 만들어 내게 주셨다. 작은 쪽지와 함께 늘 주먹밥을 주시는데 그 주먹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져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던 기억이 난다.      


내가 모임에서 했던 건 말 몇 마디밖에 없다. ‘잘하고 있어요. 정말 잘하시고 계세요. 이렇게 주말에 나오시니까 보기 좋으시네요. 참 멋지세요.’ 이 정도였을까? 지금 그림을 그려도 될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겐 60대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그림을 남긴 작가들의 그림들을 보여드리며 잠재된 씨앗이 있으시다고 격려해 드릴 뿐이었다. 그림 그리기가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께는 지난주보다 이번 주 어떤 점이 나아지고 있고 무엇에 장점이 있는지 찾아주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단지 그뿐인데도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 주시고 내 말을 믿어주셔서 매주 참 보람되었던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칭찬’에 인색하고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삶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가 멋진 옷을 입고 왔을 때 괜히 낯 뜨거워 ‘셔츠 색깔이 멋지네요.’라고 말하기가 어색하고 생각이 명료할 때 ‘업무 능력이 탁월하시군요.’라고 말하기가 남사스럽다. 이런 환경에 놓이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한 칭찬 역시 인색해진다. 하지만 씨앗에 물을 줘야 자라듯 사람은 칭찬을 받아야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평은 필요하지만 성장은 비평보단 나에 대한 자신감에서 생긴다고 믿는다.      




나이 역시 마찬가지다. ‘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이 들 때 옆에서 아직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워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이가 많다는 걸 경험으로 치환하여 경험이 풍부하고 삶의 씨앗이 다양하다는 격려가 필요하다. 다양한 경험을 그림이 되었든, 말이 되었든 무언가로 표현한다면 더 독특하고 재미있을 수 있다.      


고향에 자주 내려가 고향 친구들도 만나고 부모님과 자주 식사를 하겠다고 시작한 ‘드로잉 클럽’은 꾸준히 정말 꾸준히 이어가며 또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인연이 생기게 되었다. 그림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계속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나이 때문에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면 충분한 경험으로 더 재미있는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토닥이고 싶다. 당신은 이미 예술가이고, 충분하다고 넌지시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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