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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May 16. 2020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그림이 말을 걸었다

나를 위로하는 시간

요즘 유행인 ‘꼰대 테스트’를 해보니 ‘연남동 나르시시스트’가 나왔다. 연남동 나르시시스트 특징을 보니 한마디로 개성이 있는 사람 유형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이 분명하면서도 표현하길 좋아하는 유형이라고 하는데 재미로 해본 심리 테스트지만 은근히 나를 잘 대변하는 것 같아 신기했다.   

   

 취향도 분명하고 개성도 강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그 취향을 아무 때나 드러내면 오히려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가령 모두가 다 참석한 회의에서 미팅을 하는데 ‘내 생각이 다르다고’ 의견을 드러내는 순간 누군가는 상처를 받게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엄청난 책임을 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건 어쩌면 내 취향을 적절히 조절할 줄 아는 생활이 아닐까. 가령 점식 식사 메뉴를 고를 때도 난 “매운 부대찌개”를 좋아하는 취향이지만 대다수가 원하는 “초밥”을 먹어야 마음이 편하니 잠시 내 취향은 양보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10년간 회사를 다니며 사회성은 많이 길러졌지만 원초적인 내 취향은 색깔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회사형 인간으로 성장을 해 나갔지만 나는 늘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 하고 누군가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나 자신이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가끔 주변의 평가보다 나 자신이 만족스럽게 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더욱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가끔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부서를 담당하게 되거나 애착을 가졌던 업무의 담당자가 바뀌었을 때 힘이 빠지곤 했다. 조직 안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회사 안에서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질수록 어떤 식이든 나를 지키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했다.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그 시간. 한없이 작아져 가는 나 자신, 잃어가는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그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이 아플 땐 아픈 대로 표현을 하고 싶었고 피곤할 땐 피곤 한대로 표현을 하고 싶었다. 무거운 생각과 마음을 종이 한 장에 조금은 내려놓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할까. 누군가는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굳이 내가 내 입으로 오늘 일을 시시콜콜 말하기는 피곤할 때 가는 선 몇 개가 종이 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었고 회의를 하면서도 늘 낙서를 하니까 늘 그림 그리기 위한 예열은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다만 ‘나를 위해서’라는 생각보단 주로 업무를 위해서 혹은 졸음을 참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면 이번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속상한 마음은 단순히 4글자 ‘속상하다’ 정도로 표현이 안된다. 그 속상함의 정도는 얼굴의 표정과 색의 농도, 색깔이 들어갈 때 더욱 명쾌해질 수 있다. 생각이 엉망징창 뒤엉킨 상태면 선을 꼬불꼬불 섞어 눈코 입을 그리는 대신 뒤죽박죽 엉켜있는 얼굴을 대신 그려 넣었다.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깊숙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내 그림에 내가 위로받기 시작하였다. 사람 심리가 참 묘해서 슬플 땐 신나는 음악을 들어야 기분 전환이 된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 오히려 내가 아픈데 옆에서 들떠있으면 피곤해진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깊숙이 피곤함을 마주할 때 기분이 나아지는 구석이 있었다.     

 


대개 속상하거나 피곤한 이유는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였다. 어쩌면 나는 타인의 인정을 위해 그토록 많은 시간을 애써온 게 아닐까. 인정과 사랑만 받을 수 있다면 내 취향과 개성은 잠시 접어두고 서비스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했지만 생각처럼 안될 때 내 마음이 다치곤 했다. 이럴 때면 더욱 격렬하게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만의 시간이 나만의 드로잉으로 채워질 때면 소진되었던 내 감정은 천천히 희석되곤 한다. 그림 한 장이 완성될 때면 아주 가끔 작은 성취감과 함께 ‘괜찮아. 그게 뭐 대수인가?’라는 생각이 그럭저럭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무방비 상태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대한 나만의 보루가 격렬히 필요할 때 ‘그림’이 내게로 왔다. 무너져가는 나를 위해 내가 마련한 나만의 시간은 천천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고 나를 보듬어 주기 시작하였다. 타인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고 내일은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돌리면 너무나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아 상황은 더욱 어지러워지지만 관심을 내게 돌리는 순간 중심은 견고해진다. 예민한 감수성도 조금은 정돈이 되는 느낌이 든다. 살아있는 한 계속 내 상황은 바뀌고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달라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으며 천천히 그림을 그릴 테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나란 사람은 어떤 것을 원하는지 깊숙이 들여다보기 위해. 그러다 보면 천천히 내 안의 답을 찾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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