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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May 17. 2019

#17  외계 비행선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밝은 원형 물체가 그들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빛이 너무 밝은 나머지 A와 M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빛이 다가올수록 주위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들리던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풍성하던 소리의 숲이 사막처럼 메말라갔다. 소리 없는 세상. A는 두려웠다.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 게 맞는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것은 꿈인가. 아니면 아까 이미 내가 죽었던 걸까.           


A는 손으로 빛을 가리고 겨우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바위 상공에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투명하고 둥근 막이 보였다. 그 원형 막 안에는 검은 정육면체가 떠 있었다. 각 면에는 소리판처럼 생긴 둥근 판이 보였는데 그 모양이 영락없는 스피커였다. 거대한 외계 비행체는 세포 분열을 하듯 두 개가 되더니 상공에 멈추어 더욱 강한 빛을 내뿜었다. 빛이 마치 소리를 흡수라도 하는 듯.      


A는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는 M의 어깨를 흔들었다. M도 겨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M의 입이 움직였으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M도 당황했는지 한두 번 더 말을 해보다 입을 다물었다. 뻐금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신들이 물속에 잠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디로 갔는지 S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A는 바닥에 다시 엎드렸다. 소리의 천국에서 순식간에 소리 없는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세상은 소리 없는 백색 취조실이 되어버렸다. 기쁨의 눈물이 절망의 눈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게 꿈이 아니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        

   

저들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소리를 다 잃어버릴 순 없다. 더 이상 세상이 소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당신들이 가져갈 권리는 없다. 우리의 지구를 무소음으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번뜩 오래전 보았던 영화가 떠올랐다. 화성침공! 지구를 침략한 우주인들을 올드 팝음악으로 융해시켜버린 그 노래. A는 유튜브를 검색해 노래를 재생했다. 저들이 화성에서 왔다면 이 노래를 듣고 물러갈 테지. 하지만 볼륨을 아무리 크게 키워 봐도 휴대전화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M이 그를 흔들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두 손에는 샷건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총이라도 쏘는 듯 M은 마이크를 비행물체로 향했다. 그리고는 A에게 입을 크고 느리게 벌려 보였다. A는 그의 눈빛을 보고 그가 하는 말을 알아챌 수 있었다. 하. 울. 링. 하울링. 그래! A는 M이 말하는 의미를 깨닫고 일어나 휴대용 스피커 전원을 켰다. 마이크를 스피커와 가깝게 붙여 어떻게든 소리를 만들어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마법 같은 상황에서 깨어나 저들을 멈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었다. A는 가방에서 스피커를 꺼내 녹음기에 연결했다.      


M과 A는 녹음기에 연결된 마이크와 스피커를 각각 들고 마주 보았다. 10억 년 된 바위 위에 서 있는 그들의 모습 뒤로 정육면체의 외계 비행선이 빛을 내며 하늘에 떠 있다. 밝은 빛 너머의 하늘은 깊은 바다처럼 푸르렀다. A는 스피커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M과 A는 서로 한 걸음씩 다가가며 방향을 맞추어보았다.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스텝을 밟았다. 빛이 쏟아지는 무대 위에서 그들은 무반주 커플 댄스를 추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거리를 좁히다 보니 스피커가 부르르 떠는 게 느껴졌다. 그 방향대로 둘은 서로에게 다가갔다. 스피커의 진동이 더 심해졌다. 둘 사이 거리가 사라지자 진동하던 스피커에서 연기가 피어나더니 펑! 소리와 함께 불이 붙어버렸다. A는 놀라 스피커를 놓치고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외계 비행선의 빛이 사라진 것은 그때였다. 비행물체를 감싸고 있던 빛이 사라지고 잔영만이 검은 정육면체에 남아 점멸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파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처럼 소리가 멀리서부터 느껴졌다. 빛의 잔영 속에서 S가 비행물체로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정육면체 안으로 S가 사라지자 비행물체는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피디님, 괜찮으세요?”

“아 네. 이제 소리가 들리네요. 괜찮아요?”

“네. 그런데 녹음기가 불탔어요.”          

“에에에엥~”          


숲 방향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섬 전체를 삼킬 듯한 경보음이었다. 산등성이에서 군용차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M과 A는 어지럽게 놓인 장비를 수습했다. 불에 그을린 녹음기를 보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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