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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25. 2019

#15 오로라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어린 시절 A는 별을 좋아했다. 캄캄한 밤에 반짝이는 물질이 하늘에 떠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너무 멀리 있어 닿을 수 없는 아름다움.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렴풋하고 낭만적인 것들을 A는 좋아했다.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고 시인이 되고 싶었고 지금은 라디오를 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은 어렴풋한 것들. 자신만의 주파수가 있는 것들. 지상에 뿌리가 없는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별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A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 보는 별빛은 이미 과거의 빛이라는 거였다. 수백 광년 떨어진 곳의 별빛을 본다면 그 빛은 수백 광년 전 빛이라는 것. 따지고 보면 그만큼 먼 곳에서 오는 것이기에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믿고 싶지 않은 것일 지도 몰랐다. 눈앞에 있는 별빛이 저렇게 현현이 아름다운데, 내게 도달된 이 아름다움이 이미 완결된 과거였다는는 걸.          


마치 네가 곁에 없는 것 같아 난 말 없을 때의 네가 좋다.

넌 멀리서 내 말에 귀 기울이고, 목소리는 네게 닿지 못한다. 

넌 별이 총총한, 고요한 밤 같다.

그토록 아득하고 소박한, 너의 침묵은 별에서 온다. 

난 기쁘다, 어렴풋하다는 게 기쁘다.          


A는 네루다의 시를 좋아했다. 어렴풋한 아름다움. A에게 그건 별이었고 시였고 지금은 라디오였다. 소리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도 어쩌면 그런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시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때로는 침묵과도 같아서 소리로 전할 수 없는 어떤 것들. 그 광경이 지금 A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하늘을 날던 자동차는 바다 위를 지나더니 어느새 분바위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불타는 듯한 선홍빛 태양을 받아 밝고 흰 바윗덩이들은 금빛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 육지를 향해 날아가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누군가의 아름다운 꿈속을 유영하는 것만 같았다.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보다 이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더 놀라웠다.           


파도가 들이치는 바위 암석에 위태롭게 있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S임이 분명했다. 차는 그 바로 앞으로 서서히 착륙했다. 목소리와는 달리 S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소리가 모이고 있어요.” 

“아까부터 무슨 말이죠?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저 소리를 들어보세요.”          


S가 가리키는 곳은 바다였다. 시퍼렇던 바다는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서 웅장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서 들리는지 어떤 소리인지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기이한 소리가 입체적으로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소리가 마치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떠도는 광경을 A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니 듣고 있었다. 소리가 만든 오로라라고 해야 할까. 처음 듣지만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음악과도 같았다.   

        

M은 어느새 장비를 꺼내 녹음을 시작했다. 그의 살찐 두 고양이는 감당하기 힘든 공격 상대를 만난 것처럼 꼬리를 흔들며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늘 침착하던 M의 얼굴도 고양이 마이크와 함께 춤을 추며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A도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 마이크를 꺼내 녹음 채널을 가득 채웠다. 헤드폰을 쓰고 들으니 소리는 더 선명하게 들렸다. 파도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나뭇잎, 한낮의 나른한 아지랑이, 기러기가 날아가며 서로를 격려하는 소리, 바다로 해가 기우는 소리. 물속 물고기들이 이야기, 돌고래들이 장난치는 소리. 큰 고래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리. 저녁 무렵 어둠을 향해 날아가는 쓸쓸한 새들의 날갯짓, 밤을 여는 풀벌레들의 합창과 모닥불 타는 소리, 별빛이 쓰러지는 소리. 별들이 쏟아지는 소리. 달이 뜨는 소리. 달을 맞이하는 풀들의 환영. 말 없는 대지와 자연. 소리 없는 생물들까지 자신의 목소리로 주파수를 내보내고 있었다.  

   

아! 이런 소리가 들리다니. 어떻게 이런 소리가 들릴 수 있지. A는 M을 바라보았다. M은 눈을 감고 있었다. 두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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