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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08. 2021

#14 버튼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윙~”     


해변의 전화기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수화기에 밀착한 녹음 마이크를 거두며 M은 피식 웃음이 터졌다.  

    

“버튼을 눌러볼까?”

“아, 아니요.”     


M이 웃음을 거두었다.      


“대한민국이 환영한다는데, 어떻게 환영할지 궁금하지 않아요?”

“섬에서 쫓겨날 거 같은데요.”     


A는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고작 공중전화에서 나는 똑같은 통화 대기음이 들리다니, 너무 긴장했던 것이 허무하고 허탈했다. 뭘 기대했던 것일까. 예전에는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기타 줄을 조율했다고 하던데, 이 소리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소리였다. 그런데 긴장이 풀려서인지 수화기를 내려놓다가 떨어트리는 통에 버튼이 눌러졌다. 버튼에 불이 들어오는 게 보이자 더 당황한 나머지 수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A가 이걸 다시 주우려는데 M이 후크 버튼을 손으로 급하게 눌러 전화를 끊었다.      


“오, 깜짝이야. 금방 끊은…거죠?”

“네. 근데 버튼에 불이 들어왔는데 괜찮…겠죠.”

“무슨 소리가 들리진 않았죠?” 

“네. 그럴 경황까지는….”

“그래 봐야 누군가 전화를 받는 거겠지. 뭐. 금방 끊었으니까.” 

“누가 오진 않겠…죠? 그만 올라갈까요?”

“네. 군인들도 CCTV로 다 보고 있을 거니까. 우린 줄 알겠지. 뭐.”     

다시 등대로 올라와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데 배가 고파왔다. 그러고 보니 아침밥을 먹고 여태 제대로 된 걸 먹은 것이 없었다. 다시 사무실에 올라가 보았으나 역시 아무도 없었다. S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을로 돌아가야겠어요. 우리가 선착장에서 한두 시간 정도 걸어 온 거죠?”

“두 시간은 안 걸린 것 같긴 해요.”

”아,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이제 해가 질 텐데.” 

“사람이 없어서 여기서 녹음을 하는 것도 좋긴 할 것 같은데, 해질 때 바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도 했었죠?” 

“그러게. 어떡해야 하나. 해가 지면 마을까지 걸어가기도 쉽지 않을 텐데.”     


S로부터 전화가 왔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른 곳에 나와 있고 이들도 그곳으로 지금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속 연락도 안 되더니 이제야 전화를 해서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오라니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도대체 어떻게 오라는 것인가. 해도 너무 했다.      


“저기 선생님. 저희가 지금 거기를 어떻게….”

“지금 등대에 계시죠? 차가 그리 갈 겁니다. 그거 타시면 됩니다. 서두르세요. 소리가 모이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분바위입니다.”     


전화가 다시 끊겼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건 뭐고 소리가 모인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섬으로 와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오라 가라 하는 일방적인 태도에 화가 치미는 순간, 멀리 차량 불빛이 보이더니 그들 앞에 군용차가 도착했다. 군복을 입은 운전자는 말도 없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M과 A는 차에 몸을 싣는 수밖에 없었다.      


분바위는 섬 반대편 해변에 있었다. 창밖으로는 해가 지고 있었다. 망망대해로 해가 기우는 모습이 장엄하면서도 쓸쓸했다. 소리가 있는 것들은 어딘가 쓸쓸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소리가 없는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해변에 있는 전화기 때문에…. 그거 잘못해서 누른 건데요.”

“….”

“버튼 때문에 이러는 건가요?”


“악!”     


아무 말이 없던 운전자가 소리를 질렀다.      


“벨트 매십시오!”     


차가 갑자기 속력을 줄이더니 도로를 벗어나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앞을 보니 길가에 있던 나무들이 도로로 쓰러지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들이 하나둘 힘없이 무너져 도로를 덮고 있었다.    

 

“허억. 이게 뭔 일이죠?”

“어서 밸트 매세요! 어서!”      


창밖에 벌어지는 풍경에 놀랄 틈도 없이 차는 굉음을 내더니 도로로 뛰쳐나와 갑자기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M과 A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떡 벌어졌다. 벌어진 입에선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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