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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06. 2021

#13 소청도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섬에 가까이 다가가자 바닷가에 길게 늘어선 흰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에 분을 칠한 것처럼 하얗다고 해서 분바위란 별명이 붙은 바위들. 10억 년 된 석회암이었다. 새하얀 바위들에 달빛이 반사되는 모습이 너무나 밝아 등대가 없던 시절에는 이 바위들이 등대 역할을 했다고 관광 책자에서 본 기억이 있다.    

  

소청도에 도착해 등대까지 걷기로 했다. 등대에서 S가 마중 나온다는 걸 말린 것은 미안하기도 해서지만 섬을 걸으며 그 기운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섬에 도착해서도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섬에 왔다는 느낌이 금방 사라지기도 하거니와 작은 소리들을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A와 M은 가능하면 섬을 걷는 걸 원칙으로 삼았고 그러다가 주민을 만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다. 인터뷰를 통해 어떤 소리를 녹음해야 할지 정하기도 하고 그러다 인연이 된 이들과 어울려 일정을 함께 하기도 했다. 걷다 힘이 들면 지나는 차를 얻어 타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특별히 문제는 없었다.      


소청도는 작은 섬이었다. 선착장에서 내려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있고 등대까지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등대까지 가는 길은 언덕을 계속 올라 능선을 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뭐든 먹을 만한 식당이나 가게는 물론이고 자판기 같은 것도 전혀 없는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길에는 차도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큰 고개를 넘어서자 오른편으로 새파란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동해처럼 바다가 푸르네요.”

“그러게. 그래서 대청, 소청이라고 하는 건가. 저기가 대청도겠죠? ”      


서해의 망망대해. 인천에서 200Km 넘게 서북 방향으로 배를 달리면 처음 닿는 곳이 소청도이다. 언덕 위 정자에 오르니 물길 너머 대청도가 가깝게 보이고 그 너머 백령 땅이 푸른 바다 너머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동쪽으로는 북한 땅이 있으리라. 만약 북에서 배로 간다면 한 시간도 거리지 않을 가까운 섬들이지만 이리도 먼 길을 돌아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오지가 되었다. M과 A는 정자에서 들리는 소리를 녹음했다. 아무도 없는 작은 섬에서 들리는 6월 초여름의 소리. 한낮의 지루한 듯 들리는 풀벌레 소리와 멀리 잡히는 파도 소리 이외 특별한 것은 없었으나 이 풍경과 정취를 소리로 담고 싶었다.      


멀리 하얀 등대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길이 닿는 땅 끝에 하얗고 둥근 건물이 이국적인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늘도 없는 한낮의 땡볕에 지쳐가던 차라 어서 저 한 폭의 그림 안으로 들어가 쉬고 싶었다. 그러나 등대는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었다. 낮은 구릉을 또 오르고 내려 겨우 등대 근처에 닿았다. 등대가 가까워질수록 시원한 파도 소리가 선명히 들리기 시작했다. 등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 타들어가던 목이 소리로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등대는 해안 절벽 위에 있었다. 사무실 건물 옥상에 등대가 있어서 이곳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놓인 셈이다. 절벽 아래는 파도가 거세게 부서지고 있었는데 자갈이 깔린 해안은 섬 모서리를 돌아서까지 굽이굽이 이어져 있었다. 파도 소리가 절벽을 타고 올라와 소리가 더 크게 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여기에 새소리까지 더해져 더위를 식힐 청량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M이 녹음하는 사이 A는 사무실에 올라가 보았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A는 인기척을 내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무실은 평범했는데 기상 상황 등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벽면 한편에 있고 책상 몇이 그 아래 있었다. 통유리 너머 바다가 훤히 보이는 것 말고는 여느 사무실과 다른 것은 없었다. S에게 전화를 해보았으나 받지 않았다.      


M과 A는 등대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절벽 아래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다. 등대를 배경으로 녹음하는 장면을 찍으면 영상도 꽤 쓸 만할 것 같았다. 다행히 절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따로 있어서 해변까지 가는 것은 보기보다는 수월했다.      


해변에는 전화기가 한 대 있었다. 기이한 풍경이었다. 빨간 간판에 노란색 글자가 쓰여 있는 입간판 그리고 그 아래 나무로 허술하게 만든 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숫자는 없고 달랑 버튼 한 개만 있는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래에 있는 전화기의 신호 단추를 누르시면 안전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생뚱맞게 해변에 이게 무슨 뭘까 할 게 분명했다.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이들에게도 기이한 풍경이긴 마찬가지였다. 북한에서 바다를 건너와 귀순을 하게 된다면 전화를 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소리가 들릴까?     


A는 수화기에서 어떤 소리가 들릴지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수화기를 들었다가는 어디선가 군인들이 나타나 녹음하는 것까지 방해하지 않을까 고민이었다. 그러면 녹음을 다 마치고 돌아와 수화기를 들기로 하고 해변에 녹음 장비를 펼치기로 했다. 그나저나 S는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인지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해는 수평선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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