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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Mar 18. 2019

#16 S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헤드폰을 감싸고 있던 A의 두 손은 바위를 더듬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A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득한 얼굴로 마이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며 내내 풀지 못했던 질문들. 소리가 없는 것들을 어떻게 소리로 담을까. 소리 없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전할까. 갑자기 그 해답을 허무하게 엿본 기분이었다. 그것은 황홀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맥이 풀리는 일이기도 했다.           


그동안의 일들이 A의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백령도 콩돌해변 파도에 콩알만 한 작은 돌들이 나동그라지는 소리, 석모도 보문사의 장엄한 저녁 예불 소리, 교동도의 여문 들판에 불던 바람 소리, 대이작도 삼신할머니 약수터에서 들었던 평온한 숲 소리, 덕적도 초등학교 솔숲에서 들리던 파도와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소리가 전하는 자연과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졌던 그런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소리로 담을 수 없어 안타까웠던 순간들. 석모도의 자랑인 노을 지는 풍경과 천년을 바라보는 교동도 은행나무 소리, 대청도 홍어를 낚을 때 함께 떠오르던 새벽의 말간 태양,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백령도 두무진의 절경 그리고 굴업도의 쏟아지는 별들. 침묵하는 자연을 소리로 담으로 애쓰던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코미디처럼 녹음된 소리들이 떠올랐다. 물범을 만났으나 정작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 탄식했던 한숨 소리. 노을 지는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앞에 서서 부처님만 바라보던 멍한 눈빛. 천년 된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할머니들과 나눈 오랜 이야기들.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적막한 밤, 아무것도 낚지 못했지만 컴컴한 바다에 퍼진 고요. 작은 소리마저 될 수 없었던 섬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          


“놀랐습니까?”          


어느새 앞에 S가 서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말씀드린 대로 소리가 이곳으로 모여든 겁니다. 이제 떠날 겁니다.”

“떠난다고요?”

“그들이 오고 있어요. 당신들이 버튼을 눌렀더군요.”

“네? 버튼이라면… 해변에 있던 전화기요? 그게 무슨 소리….”

“이제 곧 여기로 올 겁니다. 달이 밝아지면.”

“누가 온다는… 군인들이? 아니면 북한에서?”

“우주에서 오고 있습니다. 지구의 소리를 가지러.”

“네엣?”          


어느새 M이 옆에 와 있었다. M이 너무 큰 소리로 놀라는 바람에 A는 벌떡 일어서게 되었다.     

     

“우주인이 여기로 지금 온다고요? 대체 뭔 소리입니까? 이게 다 무슨 일이고요. 자세히 얘기를 좀 해보세요. 당신은 누구죠? 등대 관리원 맞아요?”

“네. 하지만 저도 지구인은 아닙니다.”

“허억.”

“맙소사.”          


어둠이 빠르게 내리고 있었다. 바다는 어둠 속에서도 푸른빛을 잃지 않았다. 하얀 분바위 때문이었다. 월띠. 달의 긴 띠 같다는 분바위의 별명이었다. 달빛을 받자 바위들은 더 희게 빛났다. 등대가 없던 시절에는 이 바위들을 바라보고 배들이 방향을 잡았다. 이 빛을 따라 우주선이 온다는 것이 S의 말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이라 놀랄 것도 아니라고. 자신도 이미 백 년 전에 우주에서 파견한 관리인이며 이 땅에 등대가 생겼을 때부터 여기저기에서 등대를 지켜 왔다는 황당한 소리가 이어졌다. 사실 자신이 등대에서 하는 일은 우주와의 접선을 하는 것이고 곧 지구의 소리를 가지러 비행선이 도착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신호를 자기 대신 당신들이 보낸 것이라고.          


A와 M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라도 찾는 눈길이었지만 마땅한 질문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일을 되돌아보면 S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왜 하필 소리를 가져가는 거죠?”

“지구에서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가 보호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하고 싶어 했던 사운드 아카이빙. 오래전부터 진행된 이야기입니다. 소리 행성에는 지구의 소리뿐만 아니라 우주의 여러 소리가 머뭅니다. 나중을 위해서.”

“나중이라뇨?”

“그건 저도 모릅니다.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당신들의 일을 알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들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당신들은 정말 듣고 싶어 했으니까. 이미 오래전 사라진 소리까지.”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하지만 아까는 정말 놀랐어요.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소리를 듣고 이게 별이 떨어지는 소리라는 걸 제가 알고 있다는 것이.”

“당신들에겐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빼앗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버린 것이라는 걸.”          


멀리 별빛이 반짝였다. 어떤 섬보다 소청도에는 별이 많았다. 바다가 깊은 만큼 하늘도 깊어 보였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반짝이던 별빛 하나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얀 꼬리를 드리운 별똥별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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