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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ul 10. 2021

#18 NLL

사라진 소리들이 가는 세상

“펑!”          


소리와 함께 조명탄 하나가 분바위 상공에서 터졌다. 비행선이 사라지자 이번엔 분홍빛으로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분바위 위로 솟아오른 조명탄은 꼬리에 연기를 물고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펑! 조명탄 하나가 더 터졌다. 불빛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너희들은 포위됐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사이렌에서 흘러나오는 긴장된 소리가 고요한 바닷가에 메아리쳤다. 긴박한 분위기와는 달리 A와 M은 당황하지 않았다. 외계 비행선까지 만난 마당에 오히려 이런 상황이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불탄 녹음기가 걱정이었다. A는 녹음기를 손에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녹음한 소리가 온전히 남아 있을까. A는 녹음기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러다가 군인들에게 모조리 빼앗기진 않을까. 

          

“무기를 버리지 않으면 발포한다.”          


펑! 조명탄이 다시 분바위 상공에서 터졌다. 달빛에 은은히 빛나던 바위는 더 희게 밝아져 바위 밑에 달라붙어 있던 검은 홍합과 성게가 더 까맣게 보였다. 수면으로는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며 장난을 치고 해안 모래에 기어오르는 골뱅이들은 빛을 받아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다. 숲에서는 놀란 고라니들이 달아나는 게 보였다. 거짓말처럼 모든 게 선명했다.           


노란 조명탄이 머리 위에서 터질 때마다 A는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별똥별처럼 조명탄 불꽃이 떨어지는 바닷가. 작은 어촌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A는 우주인들이 들려주었던 소리를 마음속에 떠올려 보았다. 달이 빛을 내는 소리, 별이 뜨는 소리, 달을 맞는 들꽃들의 소리, 물고기들의 합창, 얼룩무늬 물범의 장난스러운 소리, 대청 고래의 울음 그리고 말 없는 것들이 들려준 아름다운 소리들. 그 모든 소리가 녹음기에 남아 있을까. A는 그 소리를 듣고 싶었다. 목에 걸치고 있던 헤드폰을 녹음기에 꽂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마지막 경고다. 무기를 내려놓고 두 손을 들어라. 경고한다. 투항하지 않으면 발포한다.”      

군 트럭이 분바위 해안에 대열을 갖추었다. 좌우에서는 군인들 몇이 그들을 둘러싸며 달려오고 있었다.          

“피디님, 녹음기 내려놔요. 빨리!”          


M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렸다. M은 자수라도 하는 듯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니 정말이지 방금 바다를 건너 북에서 넘어온 사람같이 꾀죄죄한 행색이었다. 하긴 오늘 겪은 일이 어디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NLL이 아니라 우주의 경계를 넘나든 하루였다. A는 M을 향해 안심하라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탕!”          


초여름 밤의 소리가 한순간에 멈추었다. 소리뿐만 아니라 주위 공기마저 뒤바꾼 것 같은 총성이었다. 그 여운이 M의 귀에 길게 맴돌았다. 그때 A가 무릎을 꿇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M은 소리를 질렀다. 엎어진 A를 일으키고 싶었으나 머리 위로 든 손을 내릴 수는 없었다.      


“움직이지 마.”          


엎어진 A는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반대로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한쪽 헤드폰은 머리 위로 벗겨져 있었다. 분신처럼 늘 쓰고 다니던 야구모자만 엎어진 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자 M은 눈물이 터졌다. 눈물 속에 그와의 일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새 군인들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M은 흐느껴 울었다. 그의 마지막 미소가 떠올랐다.    

  

“녹음기 살아있어. 울지 마.”          

A는 미동도 없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울지 마요. 우리가 우주의 소리를 녹음했어.”

“뭐야. 죽은 줄 알았잖아. 움직이지 마요.”           


M은 이번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군인들이 다가와 주의를 더 살피더니 소리를 내질렀다.      

   

“입 닥쳐. 당신들 뭐야. 이거 오늘 들어온 사람들이잖아.”

“공포탄에 왜 고꾸라지는 건데. 아까 그 빛은 뭐야? 당신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M은 입을 뗄 수 없었다. 그제야 꼼짝 않던 A가 서서히 몸을 비틀어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오늘 겪은 일을 말한다 해도 믿을 수 있을지 A는 의문이었다. 녹음된 소리를 증거라고 내밀면 믿을 수 있을지 혹시라도 그걸 가져가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었다. 별이 뜨는 소리를 믿어 줄지 달을 맞이하는 풀들의 소리를 이해할 수 있을지 물고기들의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하면 믿을지, A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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