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일기예보에서 앞으로 며칠간 한파로 영하 10도에서 17도 사이의 매우 추운 날씨가 예상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침 6시에 회사를 가야 하는 나는 출근이 걱정되었는데 아내는 날씨가 추우니 차를 가지고 가라고 했다. 잠깐 아내의 말에 그럴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회사가 시내도 아닌 시외인데 기름값에 고속도로 요금에 추위에 떠는 나보다 돈에 떠는 내 모습이 더 슬프게 아른거려 일단 그냥 대중교통으로 가기로 했다. 아침에 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평소보다 더 단단하게 무장으로 하고 집을 나선다. 어두컴컴한 길거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더 추위가 느껴졌다. 추운 바람을 조금이라도 덜 맞으려고 지하주차장, 전신주, 담벼락을 이용하여 은폐/엄폐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덧 횡단보도 건너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제발 오래 안 기다리고 버스가 와주기를 빌면서 권투선수 줄넘기하듯 스탭을 동동거려본다. 버스정류장에서 내가 타는 버스가 몇 분후 도착인지 보는데 4분 후 도착이다. 평소 날씨라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상황이지만 한파는 한차인지라 4분도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즉시 정류장 뒤에 몇 미터 떨어져 있는 상가 입구로 들어간다. 입구에 문이 달려 있지 않았지만 상가 안으로 몇 발자국 들어간 것과 그냥 바깥 버스 정류장에 그대로 서있는 건 체감온도가 상당히 다르게 느껴졌다.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종종 머리를 입구 바깥으로 내밀어 버스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살핀다. 몇 분의 온기를 위해 상가 안으로 들어왔다가 버스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 슈퍼 울트라 자이언트 다이내믹 대참사가 될 것 이기 때문에. 드디어 버스 도착 2분 전, 밖으로 나와 1 정거장 전쯤에 있는 버스를 육안으로 확인한다. 영화에서 본 특공대 인질 구출팀을 보는 것 같이 반갑고 듬직하다. 버스가 20미터 정도 접근했을 쯔음 난 주머니에서 정말 꺼내기 싫은 손을 꺼내 위아래로 흔들며 난 반드시 당신 버스를 타겠다는 굳은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만의 하나 하차하는 승객이 없고 버스기사가 나를 보지 못해 버스를 못 타면 안 되기 때문에 추운 공기 흐름에도 팔을 흔든다. 버스에 타고 아침 일찍이라 앉을자리는 여유가 있어 자리를 잡으면 비로소 한숨이 나온다. 이제 회사에 갈 때 까지 30여분 동안은 온전히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같이 버스에 탄 사람들도 추운 밖에서 탈출하여 자리를 잡은 것에 감사하는 듯 얌전히 자기 자리에서 쉬고 있다. 버스에 타서 자리에 앉아 불편한 좌석에서 최선의 포즈를 잡고 잘 준비를 마친 지금 하루 중 몇 안 되는 소중한 순간이 시작된다. 그리고 비록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그 사람들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졸던지 침을 흘리던지 간에 나에게 1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 편안함을 더 크게 만든다. 같이 있지만 따로 있는 이 공간 이 시간이 겨울이라는 계절과 함께 나를 묘하게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버스가 가면 나도 30분 후 회사에 도착하듯이 나라는 몸속에 꼭 맞지 않아 덜렁거리며 들어있는 나라는 정신도 몸이 하루하루 죽음으로 도착해 가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따라서 그곳으로 갈 것이다. 가끔 힘들어도 삐까번쩍하고 멋지지는 않지만 그냥 따라갈 수 있는 40대 현재의 삶까지 꾸역꾸역 온 나를 응원해보자. 한파 겨울의 날씨에도 새벽 버스까지 오늘도 꾸역꾸역 몸을 끌고온 나를 응원해 보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