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보다 계산서
2일 차 저녁은 오마카세다. 작은딸 내외가 야심 차게 선택한 코스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오마카세라는 말만 들었지 한국에서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위는 한국에서도 못 먹은 음식을 먹는다며 내내 기대에 차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다 예약했기에 별도로 처리할 일은 없었다. 다만, 숙소에 좀 일찍 도착했기에 예약한 시간보다 일찍 가면 안 되는지 딸한테 물으니 안 될 거라고 한다. 식당에 가보니 미리 올 수 없는 구조였다. 식당은 5시, 7시 두 타임만 운영하고 있었고 한 타임에 거의 두 시간을 꽉 채워서 음식이 계속 나오는 방식이었다기 때문이다.
식당은 크지 않았다. 보이는 공간은 길다란 직사각형으로, 가운데를 중심으로 요리하는 테이블과 식탁이 맞닿아 있었는데, 오른쪽은 요리하는 공간, 왼쪽은 먹는 공간이었다. 노련한 남자 요리사 한 명과 보조하는 남자 한 명, 그리고 아주 앳돼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서빙을 했다. 바 테이블처럼 좁고 긴 식탁은 한 줄로 11명이 앚을 수 있었다.
우리가 간 날은 11명이 꽉 찼다. 우리가 앉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 세 명은 한국인, 오른쪽 다섯 명은 중국인이었는데, 우리처럼 다들 가족 같았다. 굳이 말하자면 세 가족이 식사한 셈이다. 코스는 두 가지여서, 싼 것은 1인당 14000엔, 비싼 것은 18000엔이었다. 왼쪽에 앉은 세 명 가족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그들은 18000엔짜리를 주문했다. 오른쪽에 앉은 중국인 가족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14000엔짜리를 주문했지만, 결과적으로 16000엔이 되었다.
16000엔이 된 사연은 이렇다. 먹는 중간에 갑자기 메일 요리사가 음식 하나를 보여주며 먹겠느냐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그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우니 초밥 어쩌고 이야기하고 있던 터라 값도 물어보지 않고 넙죽 오케이를 했다. 그 후 그 요리사는 굴 요리를 더 제안했는데 그것은 안 먹겠다고 했다.
그런데 중간에 페어링으로 정종을 한 사람당 두 잔씩 모두 6잔을 주었다. 의아해서 옆 테이블을 보니 한국인 가족은 이미 페어링 하고 있었고, 중국인 가족한테는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술을 페어링 하면 너무 값이 올라가서 우리는 그냥 한 사람당 한 잔씩, 사위와 딸은 정종을, 나는 맥주를 주문해서 먹고 있었기에 서비스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냥 먹었다. 생전 처음 오마카세를 먹다 보니, 이런 상황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딸은 우리가 추가 주문한 음료 석 잔 값을 더하여 합계를 내놓고 있었는데, 다 먹고 나서 받아 든 계산서는 합계보다 금액이 훨씬 많았다. 어찌어찌 소통한 결과 페어링으로 내준 정종 6잔과 추가로 준 우니 초밥이 합산된 것이었다. 정종은,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주문하지 않은 것이라며 항의하니 빼줬다.
문제는 우니 초밥 하나가 2000엔, 한화로 거의 2만 원이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거 하나가 2만 원이라니 값을 알았으면 굳이 안 먹었을 텐데, 설마 그 정도로 비싸겠나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예산을 초과했다. 굴까지 먹었으면 18000엔이 될 뻔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18000엔짜리는 14000엔짜리보다 음식이 두 가지 더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한테만 뭔가를 더 먹겠느냐고 권한 것은 중국인 가족도 18000엔짜리를 먹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우리에게도 18000엔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바가지를 쓴 것은 아니지만 뭔가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작은딸이 자기 행동을 설명한다. 예전에는 돈 확인하는 것이 창피하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창피할 일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에는 꼭 확인한다고 한다. 따지고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넘어가자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돈 이야기가 전혀 창피하거나 구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터라 당연하다고 동의했다. 이렇게 우리의 생전 처음 오마카세는, 요리사의 음식 솜씨와 맛보다 요리사가 뭘 주면 그것이 서비스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확인하고 계산서도 꼼꼼히 보자는 뜻밖의 교훈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