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오전, 시끼나 엔 공원과 사당, 그리고 치넨 공원
세상에, 오키나와라니!
2일 차부터는 차를 렌트해서 다녔다. 어제 식당에서 나올 때는 비가 꽤 와서 택시를 불렀는데, 오늘은 렌트 카다. 일본어 하나도 못 해도, 식당도 예약하고 택시도 부르고 차도 렌트하고 게다가 차의 내비게이션은 다 한국말이니 현대 IT 기술에 여행이 자유롭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먼저 시끼나 엔 공원에 갔다. 시끼나 엔이라는 이름을 여러 번 들어도 영 외워지지 않더니, 識名園이라는 한자를 보고 나서야 외워졌다. 한중일 삼국이 한자 문화가 공통이라 한자만 조금 알면 일본이나 중국에 가는 것은 유럽에 가는 것보다 유리하다. 간체자까지 알면 금상첨화다.
실제로 20여 년 전 중국 북경에 갔을 때 교통 문제로 일행과 떨어져 혼자 유리창 거리에 남게 되었는데, 다행히 간체자를 많이 알고 있어서 필담으로 쇼핑도 하고 무사히 일행과 합류한 적이 있다. 일본에 생협 임원 연수 갔을 때는 통역사가 부족해서 내가 있는 테이블에서는 내 주도로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자 많이 섞고 조사와 서술 어미, 의문사 등만 일본어로 붙여서 가능했던 일이다.
시끼나 엔 공원은 류큐 왕족의 별궁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류큐 왕조의 수도는 슈리성인데 마침 수리 중이라 시끼나 엔만 방문했다. 별궁으로 쓰는 건물 한 채와 경비가 머무는 작은 건물 한 채, 이렇게 두 채의 건물만 있었는데, 두 건물 다 채색이 전혀 없이 나무 원재료 그대로 몇백 년 보존되어 온 것 같았다.
한국 전통가옥은 건물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데 여기는 신발 벗고 들어갈 수 있다. 별궁 건물 구조가 아주 특이해서 건물 안에 방문을 다 열어 놓으면 큰 강당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바닥의 나무로 된 바닥이 소박하면서도 아주 멋있었다. 내가 짠 일정이 아니라 사전 정보도 별로 없어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비까지 와서 그런지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아련했다.
공원 산책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가려고 주차장 쪽으로 가다 보니, 길 건너에 사당이 보여 들렀다. 출입문 입구에 시끼나 엔 공원이라고 쓰인 오래된 표지석이 있었지만, 내부는 최신식 건물이었다. 류큐 왕족을 제사 지내는 사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접수처 화살표 표시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절처럼 돈을 받고 제사를 지내주는 일도 하는 것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직사각형 모양의 큰 저수조가 있는데 저승을 상징하는 설치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보통 관광코스에는 없는 곳인데, 내 호기심으로 구경하게 돼서 더 뜻깊었다.
다음 행선지로 가다가 점심 식사를 위해 이온이라는 큰 마트에 들렀다. 15000원과 7000원짜리 초밥 세트 두 개가 어찌나 푸짐한지, 저녁에 오마카세를 예약했으니 지금 너무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잠깐이고, 눈앞에 보이는 초밥의 유혹은 강렬했다.
그다음에 들른 치넨 공원은, 표지석에 의하면, 네 개 마을을 병합하며 폐촌된 치넨 마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라는데, 왜 병합하게 되었는지 사연은 없었다. 동해의 낙산사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새로운 느낌은 없었지만, 폐촌된 마을을 길이 남긴다는 취지가 의미 있었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세화우타키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