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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오키나와라니!

도쿄도 교토도 오사카도 안 가보고 오키나와로!

by 유영희

작년 가을 작은애가 느닷없이 여행을 같이 가자고 한다. 물론 사위와 함께다. 눈치를 보아하니 효도 여행이라는 걸 계획한 모양이다. 그 말을 들으며 바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온 식구가 다 떠나면 고양이 세 마리는 어찌할 것이며, 그렇게 며칠간 24시간 같이 지내다가 딸이나 사위와 불편한 일이 생기면 어쩔 것인가, 몇백만 원씩 들여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인가 하는 윤리적 갈등까지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그러나 사위가 이직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해서 바람 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명분과 이런저런 상여금이 들어와서 이참에 효도하겠다는 설득에 기꺼이 즐겁게 다녀오기로 했다. 고양이는 앞집에서 봐준다고 해서 부탁하기로 했다.


처음 딸이 추천한 곳은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였는데 3박 4일에 6시간 비행이면 오고 가는 데만 이틀이 꼬박 걸리는 셈이라 비효율이라고 결론짓고, 중국이나 일본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중국은 20년 전 북경에 열흘 연수 다녀온 것과 일본 역시 거의 20년 전 후쿠오카에 3박 4일 연수 다녀온 것 외에는 가본 적이 없으니 어디라도 좋았다. 중국 경치 좋은 곳도 물망에 올랐으니 최종 결정은 일본 오키나와로 했다. 오키나와로 결정한 데는 내 주장이 크게 작용했는데, 도쿄도 교토도 오사카도 안 가봤지만, 일본 입장으로서는 변두리인 오키나와로 내가 결정한 이유는 오래전 기억 두 가지 때문이다.


기억 하나는 재일한국인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중, 재일한국인 주인공이 홋카이도 출신과 오키나와 출신과 함께 세 명이 삼총사처럼 뭉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키나와가 궁금했다는 기억이 남아있었고, 그런데 그 소설 제목은 기억이 잘 안 난다. 『GO』 같기도 하고 『레벌루션 No.3』 같기도 하다. 책은 진작에 없애서 알라딘에 검색해 보았는데, 그래도 잘 모르겠다. 다른 기억 하나는, 큰애가 중학교 3학년 때인가 오키나와로 한중일 역사 캠프에 열흘 간 다녀왔는데 엄청 좋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혼자 원시림 같은 것을 상상하며 신기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1월 23일에 출발하기로 했다. 3박 4일인 데다 작은애 내외가 필요한 것은 다 챙긴다고 하니 나는 정말 챙길 것이 없었다. 작은 기내용 가방 하나 가져가지만, 그래도 여행 중 가장 호사스럽게 매일 갈아입을 수 있을 만큼 옷을 여러 벌 챙겼다. 오키나와는 섭씨 20도 정도라고 하니 옷이 두껍지 않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인천 공항 검색대를 교체했는데 문제가 있어서 4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고 해서 아침 일찍 출발하느라 잠을 하나도 못 잤지만 비행기에서 두어 시간 자고 나니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키나와 공항에 내려 두 칸짜리 모노레일을 타고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갔다. 모노레일 티켓이 어찌나 작은지 마치 소꿉놀이 물건 같았다.



숙소는 에어비앤비였는데 방 두 칸에 거실 겸 부엌이 있는 깨끗한 곳이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깨끗하고 공간이 여유 있고 가격도 호텔보다 많이 싸다고 하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짐을 풀고 국제거리를 구경하고 오키나와 전통 음식이 나오는 식당으로 갔다. 그곳은 오키나와 전통 춤 공연도 하는 곳이었다. 작은애가 가수가 나오는 식당과 춤 공연이 있는 식당 두 군데 중 선택하라고 했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춤 공연 식당을 골랐는데,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오키나와에서 첫날이 시작되었다.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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