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요약하면 이렇다. 리스본에서 할 일은 딱 두 가지. 2박3일을 머물든 한 달을 살든 마찬가지다. 하나는 '28번 트램 타기'이고, 다른 하나는 '파두를 듣는 일'이다. 만약 하나만 해야 한다면 '노란색 28번 트램을 타고, 알파마로 가서 파두를 듣는 거'다. 리스본에선 정말이지 파두를 들어야 한다. 그것도 꼭 알파마 골목에서.
파두는 궁상맞은 음악이다. 듣고 있으면 저절로 처량해진다. 이름은 숙명이란 뜻의 라틴어 파툼(fatum)에서 따왔다. 파두의 밑바닥에 깔린 독특한 정서를 '사우다드'라고 부른다. 누구는 정(情)이라 하고, 또 누구는 향수라 번역한다. 해석할 수 없는 가사는 떠난 이를 헤아리는 파도의 부서짐 같은 것이라고 한다. 파두가 생긴 유래를 알면 이곳 사람들 마음 절반이 이해된다.
이베리아 반도 끝 자락에 붙은 작은 나라 포르투갈. 이 나라 사람들은 바다에서 삶을 꾸려왔다. 바다는 동경(憧憬)의 대상이자 두려움, 그 자체였다. 배를 타고 험한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 사람들은 바다로 가야 하는 운명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뒤섞여 어찌할 줄 몰랐다. 여기에 이슬람 세력의 오랜 지배로 '인생은 운명의 노리개'라는 체념이 배어들었다. 이게 '사우다드'다. 사랑했지만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거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찬란한 슬픔. 사람들은 파두를 부르며 인생을 깨닫는다. 여행자들도 도리 없이 물들고 만다.
아내와 나는 작정하고 알파마를 걸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골목에는 일찍 온 저녁이 미적거리는 오후와 자리를 맞바꾸고 있었다. 할머니 곁이 지겨워진 고양이는 계단에 나와 앉아 제 그림자와 대화를 나눴다. 열린 문틈으로 '사르디나'라고 부르는 청어 굽는 냄새가 났다.
포르투갈 말에 '자넬라'(janelar)라는 동사가 있다. 우리말로 억지로 바꾸면 '창문하다' 정도. 구글엔 '알파마의 창문가에 홀로 서서 하염없이 골목 어귀를 바라보다.'라고 씌어있다. 아내는 왜 하필 '알파마'냐고 물었지만 답은 찾지 못했다. 알파마는 리스본에서 제일 높은 언덕에 위치한 상조르주(St. George) 성에서 테주강으로 내려가는 기슭에 생긴 마을이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무어인이 살다가 쫓겨난 산 비탈을 가난한 어부와 노동자가 차지했다.
1755년 도시의 절반을 쑥대밭으로 만든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아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이 남아있다. 칠이 벗겨진 계단. 부서져 가는 발코니. 바다로 나간 사내를 기다리는 여인. '창문하다'라는 단어가 빗금처럼 내리 꽂히는 오후. 보라색 라벤더 꽃잎이 허공에 나부끼는 알파마에 들어섰다.
바람이 불자 창문 앞 난간에 널린 치마는 펄럭 저 혼자 뒤집혔다. 민망한 나는 얼른 선글라스를 꼈다. 하얀 속곳은 집 나간 남편을 기다린다는 뜻이고, 알록달록한 속곳은 기별 없는 남자를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표시다. 빨래마저 먹먹하다. 순간 저만치 앞서 걷던 아내가 뒤돌아 보며 손짓했다. 골목 술집 앞에 차린 서너 개 접이식 테이블에서 누군가 파두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이름은 '까리나'(Carina).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아직도 파두를 부르지만 누가 봐도 한물 간 노장. 전문 가수를 고용하지 못하는 동네 식당 문간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파두를 불러 매상을 올려주고 끼니를 해결하는 처지다. "그럼. 이런 게 바로 파두지." 나는 그녀를 마주 보는 건너편 자리에 엉덩이를 비집고 앉았다.
도수가 센 리스본 전통 맥주, 사그레스를 들이키며 손가락에 낀 담배가 다 타들어갈 때쯤 그녀가 일어섰다. 옆자리의 사내가 빠르게 포르투갈식 기타, 기따라(Guitarra) 줄을 골랐다. 그녀가 첫 음을 뗐다. 쉬고 갈라진 목청. 항구의 바람소리 같은 게 쏟아졌다. 가슴 밑바닥에 고인 격정이 밥물 넘치듯 아슬아슬 끓어오르는 멜리스마 창법. 세상에서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가 부른 건 '검은 돛배' (Barco Negro)라는 노래였다.
바다로 떠난 어부를 잊지 못한 여인이 있었다. 어부의 시신을 싣고 검은 돛을 단 배가 항구로 돌아오자 여인은 통곡했다. 울음은 바람을 타고 번져 노래가 됐다. 노래가 울음이라고 믿는 포르투갈 사람들. 가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불빛 속에서 너울거려요. 당신의 두 팔은 지친 듯 흐늘거리고. 당신은 뱃전에서 내게 손짓하네요. 하지만 바닷가 노파들이 말해줬어요.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검은 옷을 움켜 쥔 까리나가 목청을 돋웠다. 설움이 바닥나 오히려 잃을 게 없는 처연함. 높은음에선 노란 가로등이 파르르 대신 소리를 냈다. 그녀가 치맛자락을 잡아채자 신발을 신지 않은 하얀 발이 드러났다. 반주하는 사내의 기따라는 빠르고 서슴없이 밤공기를 갈랐다. 여섯 개의 겹줄로 현을 만든 기따라는 부둥켜안을수록 연주자의 심장 박동을 공명통에 더 잘 전달시킨다. 악기가 내는 가장 아름다운 울림이 사람을 닮은 소리라는 데 하물며 심장의 두근거림이라니. 두 귀가 저절로 곤두섰다.
절정에 닿은 것일까. 까리나가 순간 노래를 멈췄다. 연주가 뚝 끊겼다. 그리고 이어진 잠깐의 침묵. 나는 숨을 죽였다. 그녀가 살아온 세월. 또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겪었을 굴곡진 삶들이 링거액처럼 듣는 이의 핏줄로 뚝뚝 떨어졌다. 온 몸의 잔털이 다투어 일어섰다. 그녀가 별안간 고개를 젖혔다. 그 바람에 묶어 올린 그녀의 까맣고 긴 머리가 철렁 땅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미동도 없이 먼 곳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나머지 노래를 읇조렸다.
아내는 가사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여행을 시작한 지 어느덧 몇 주. 떠나온 것들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리라. 아내가 말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소리는 다 낡은 것에서 나오나 봐. 까리나의 다친 성대. 오래된 골목. 해묵은 우정 같은 데서 말이야."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어찌 그것뿐이랴. 철삿줄로 꽁꽁 묶인 기타. 몸속에 구멍 뚫린 피리. 속에 바람만 잔뜩 든 북. 뼈투성이 피아노. 다 오래되고 망가진 것들이다. 그럼 나는, 하고 생각했다. 그럼 나는 아직도 너무 견고하단 말인가.
노래가 끝났다. 우리가 도착한 게 막바지였던 모양이었다. 까리나는 옆 사람과 요란하게 뺨을 비비곤 "치아모"(Te amo)를 외치며 사라졌다. '사랑해요'라는 뜻인 줄은 나도 알았다. 남은 사람들은 "차오, 아미치" "오브리가도" 를 주고받으며 자리를 떴다. 흥이 식기 전 어디든 들어가 한 잔씩 더 기울일 눈치였다. 처마 밑으로 후드득 빗방울이 들었다. 가로등 불빛이 이내 눅눅해졌다. 아쉬움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는데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가게 안으로 아내를 찾아들었다.
저만치서 아내가 사진을 보고 있었다. 이 건물에서 살았던 나이 든 사람들의 흑백 사진이 내실로 가는 아줄레주 벽에 가지런히 붙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아내는 사진 하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검은 드레스 차림의 핸섬한 할머니. 그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뒤에서 누가 툭 쳤다. 퇴근 차림을 한 까리나였다.
그녀는 짙은 눈썹을 꿈틀 추켜올리며 말을 붙였다. 서툰 영어였다. "맘에 들어요. 그 사진?" 담배 냄새가 훅 코를 찔렀다. 나는 숨을 참았다. "우리 엄마예요. 파두 가수였는데 쭈욱 여기서 노래했어요. 노래만 부르며 살다가 나를 낳았는데, 우리 아버지가 누군진 모른데요." 마지막 문장에 내가 당황해 하자 그녀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아 그땐 뱃사람들이 여길 정처 없이 드나들었다니까요. 엄만 혼자 살면서 나를 키웠죠. 이렇게 잘요. 하하" 말대꾸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바깥에서 오토바이를 꺼내는 늙은 사내를 소리쳐 불렀다. "올라!"
오토바이가 내달렸다. 뒷자리에 탄 그녀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길바닥에 흩어졌던 라벤더 꽃잎이 오토바이가 일으킨 바람에 가로등 불빛 속으로 날아올랐다. 오토바이가 비탈길 아래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현기증처럼 나풀거리는 연보랏빛 나비 떼. 그러다 문간에 선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내를 손짓해 불렀다. '창문하다' 라는 단어가 왜 꼭 알파마여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을 듯했다.
posted by 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