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편지
요즘 엄마는 나와 다른 너에 대해서 알아가는 중이란다. 엄마의 딸이라고 마치 내 분신처럼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네가 아프면 엄마도 아프다고. 신기하게 마음뿐 아니라 몸도 통증을 느낀다고 네게 말 한 적이 있었지. 너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정말이야. 네가 아플때면 마치 아직 엄마와 분리되지 않은 것처럼 엄마도 아픔을 느낀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때때로 우린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잖아. 지난번 아빠 휴대폰에 몰래 비밀번호를 바꿀 때도 우린 동시에 같은 패턴을 생각해냈고. 며칠 전 저녁에 네가 문득 먹고 싶다던 샤부샤부를 엄마가 너 없는 낮 시간에 미리 준비해놓았었지. 영화를 볼 때도 갑자기 같은 것을 떠올리고 음악을 들을 때도 우린 공유하는 것들이 참 많아 깜짝 놀라곤 해. 그렇지 않니?
그런데 너는 나와 참 다르다. 채은이는 엄마보다 용감하고 대담하고 때로는 침착해. 수다스럽지 않아서 남의 흉을 보는 법도 없고 대담해서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느라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도 않아. 그 흔한 자랑도 허세도 없고 묵묵히 네 갈 길을 가는 너, 엄마가 닮고 싶은 부분이 참 많은데 왜 자꾸 엄마는 반대로 얘기하며 우리 딸을 힘들게 할까. 오늘은 그런 엄마 마음을 털어놓으려 해.
엄마 마음이 어떤지 사실 네가 지금 이해하긴 힘들 수도 있어. 엄마도 엄마가 되고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단다. 그리고 오늘 편지도 너에게 쓰는 편지지만 당분간 너에게 보여주진 않을 거야. 사람의 마음은 지식처럼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타이밍이라면 언제든 네가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단다. 자연스러워야 알게 되는 것들이기도 해. 혹시 모르지 네가 엄마 나이가 되어 이 편지를 볼 때 즈음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 될 지도. 마치 지금이 엄마가 너로 인해 성장하는 좋은 타이밍인 것처럼.
오늘은 엄마가 채은이와 함께 행복하기 위한 몇 가지 다짐을 했단다.
우선 아무리 화가 나는 순간에도 너를 위협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로 할게. 엄마의 시간 습관을 강요하며 네가 가진 여유로움을 늑장이라 재촉하지도, 말대꾸하는 네가 미워 맘에 없는 말로 상처 주지도 않을게. 너의 즉흥적인 반항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기다려줄게, 네가 충분히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채근하지 않을게. 너의 옷차림이 좀 거슬리고 네가 머리 빗기를 생략하는 것도 존중해 줄게. 때론 심하게 별로란 생각이 들면 살짝 귓속말하고 너의 감각을 비난하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을게. 하루 종일 연습하고 돌아온 너에게 생색내지 않고 맛있는 간식도 해 줄거야. 너는 아직 모른다고 무턱대고 걱정된다고 쏟아내는 길고 긴 연설은 이제 그만 집어치울게.
어느새 우리 딸 많이 컸더라. 네가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똑같이 존중해 줄게. 엄마가 더 많이 살았다고 모든 것을 안다고 옳다고 말하지 않을게. 너와 항상 상의하고 네가 궁금한 점은 마음 놓고 나에게 물어올 수 있게 엄마부터 먼저 믿어줄게. 엄마 논리로 싫은 것을 자꾸 설득하려고 하지 않을게. 네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기다려줄게. 더이상 혼란스러운 이중 메시지를 투척하지도 않을거야.
네 앞에서 한숨 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너를 바라보지 않을게. 너 스스로 너를 신뢰할 수 있게 엄마가 기꺼이 멋스러운 거울을 들어줄거야. 속상할 땐 함께 먹어주고 함께 웃어주는 것으로 만족할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매 순간 네가 스스로 찾아낼 수 있도록 너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게. 엄마가 아무리 너를 사랑해도 너를 엄마와 같다고 여기지 않을게. 아는척하지 않을게. 너의 비밀을 존중해 줄게. 우리 딸 무슨 생각 하며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궁금하지만 딱 네가 말해주는 만큼만 들을 거야. 때때로 엄마가 몰랐으면 하는 것들은 그냥 모르고 지나가 줄게. 네가 좀 더 마음 놓고 세상을 탐색할 수 있도록 조금 더뎌도 가끔 실수해도 엄마가 뒤로 살짝 물러나 있을게.
사랑하는 나의 딸 채은이, 마음 놓고 성장하렴!
* 딸아이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