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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Jul 01. 2024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었다


과거 나는 누구나 한 번쯤 사랑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일일 드라마에서처럼 누구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주변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그들 중 과거 서로 죽기 살기로 사랑했거나 반대로 살다 보니 없던 애정이 생겼다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오늘 사랑에 빠지지 않는 소수의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예로 부모님이 떠올랐다. 나의 부모님은 결혼 전 사진 한 번 보고 중매로 맺어진 부부다. 그 시대 여느 다른 부부들처럼 결혼 후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으나 실제 두 분은 서로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눈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엄마는 아직도 로맨스 드라마를 볼 때 소녀 같은 표정을 지으신다. 어떻게 단 한 번도 사랑에 빠진 적이 없을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지는 것이 무슨 벼슬이겠냐만은 사랑을 못 해 본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엄마에게 열정적인 사랑의 기억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어떤 걸까?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니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내 공간이 달달한 핑크빛으로 물든다. 사랑의 기억이 많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친구에게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사랑이 많은 나는 할머니가 되어도 매일같이 추억을 까먹고 사느라 심심할 날이 없을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럼 혹시 나는 금사빠일까?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좀처럼 손해 보는 사랑을 시작하는 법이 없었다. 소위 ‘나쁜 남자‘는 진지하게 좋아한 적도 없다. 소녀 시절 나의 이상형은 ”나를 만나고 헤어지는 길에 뒷걸음치며 내게 인사하다가 넘어지는 남자“였는데 실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운 좋게도 모두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중 지금의 남편이 대표적이다. 나를 거쳐간 사랑은 재지 않는 사랑이었고 나는 사랑하는 동안 대체로 행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에 빠질 뿐 사람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아~! 사랑 너무 좋아라고 말하며 온몸이 흐느적거리는 날에도 내 마음 속 가장 커다란 공간은 나에게 남겨놓았던 것 같다.


그렇다. 마치 똑똑한 사랑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랑에 있어서 나는 겁쟁이였다. 나는 통제에 대한 불안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줄 수가 없었다. 과분한 사랑이라 느끼면 오히려 행복에 불안해했다. 행복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 걸까. 심지어 사랑해서 누군가를 떼어낸 적도 있었고 사랑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사랑에 있어서 완전히 몰입하지 못했던 나는 지금에 와서 그때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돌아보니 나는 늦사빠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흔한 실연의 상처도 없다. 사랑이 식기도 전에 나는 늘 먼저 이별을 선언했고 아름답게 헤어지는 쪽을 선택했다. 연인이 아니어도 내 사랑이 필요한 곳은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마침 결혼할 시기에 만나 이어진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우리의 비교적 안정적인 감정 덕분에 나도 그도 결혼 후에는 더더욱 사랑 때문에 불안할 일이 없었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그저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혹시 내가 이루지 못한 어떤 유형의 사랑이 있다면 그건 영화 <베티블루> 속 여주인공의 무모하고 미친 사랑이 아닐까?


금사빠와 늦사빠는 어떻게 다를까?


사랑에 금방 빠지는 사람을 금사빠 라고 한다. 금사빠는 금사식과 한 세트인 경우가 많다. 빠르게 사랑에 빠지는 만큼 빨리 사랑에 식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은 금사빠가 아닐 수도 있다. 단 한 번 사랑에 빨리 빠진 것 만으로 금사빠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 경험이 많다면 금사빠임과 동시에 금사식일 가능성이 높다. 단 사랑에 경험이 많다는 것이 결코 사랑에 능숙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진정한 사랑꾼은 한 사람과 오랜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늦사빠는 어떨까? 늦사빠란 말 그대로 늦게 사랑에 빠지는 타입이거나 심지어는 좀처럼 사랑에 빠지지 않는 유형을 뜻한다. 다만 일단 사랑에 불이 붙으면 마치 숯처럼 은근하게 오래 불타는 경우도 많다니 장단점이 있다. 평생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늦사빠의 일부가 아닐까? 어쩌면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른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랑을 지나치게 이상화한 것은 아닐까?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이유


나의 부모님 외에도 주변 친구 중 연애는 많이 했으나 사랑 또는 설렘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민감하거나 둔감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타인을 나보다 사랑할 수 없는 나르시시스트가 떠올랐다. 실제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 온통 '자기' 이야기뿐이다. 좀처럼 상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온통 '나'라는 주어로 시간을 채운다.


후자인 경우 이를 감정표현불능증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자신의 신체반응이 감정반응보다 앞서는 경우다. 누군가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왜 그런지를 모르고 사랑에 대해 방어기제가 강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를 밀어내는데 급급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상처받은 경험이 많아서 일 수도 있겠다.


요즘 핫하다는 연애 리얼리티 예능 ‘나는 Solo’ 모솔 편 출연자들을 보면 어떤가? 위에 말한 두 가지 케이스를 모두 접할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든 감정표현불능증이든 분명 나름의 스토리가 있을 테다. 한편 외모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름다운 것에 끌린다. 단, 외모가 아름답지 않아도 매력적인 성격에 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일단 외모에서 자신감을 잃으면 매력적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말이다. 뭐가 먼저일까? 어쩌면 상처받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역시 누구나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닌 걸까? 사랑은 참 어렵다. 건강하지 않은 사랑도 사랑인 걸까? 잘못된 애착형성으로 인해 지나치게 상대에게 의존하는 의존적인 사랑, 오로지 열정적이고 설레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환타지적인 사랑, 타인을 사랑하는 이유가 사랑받기 때문인 자기애적인 사랑, 의존적인 사랑과 매칭되는 헌신적인 사랑, 모두 건강한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린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체 무엇이 우리를 사랑에 의지하고 방어하고 헌신하게 하는 걸까?


사랑은 분명 치명적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우주의 중심이 되어 세상에 맞서거나 등지는 일도 어렵지 않다. 마치 타 죽을 것을 알면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위험한 사랑은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의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비록 나는 맘 놓고 주는 사랑은 못 해 봤지만 내가 받은 사랑은 '치유'였다. 보잘것없는 나를 자신보다 아껴주던 그를 통해 나는 비로소 과거의 나를 애도하고 현재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의 사랑에 대해 말해 볼까? 여전히 넘치는 나의 사랑은 이미 줄 곳이 많다. 나는 이제 주는 사랑에 점차 익숙해져 간다. 그러나 아낌없이 주어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의지하고 방어하며 사랑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일은 더더욱 없다. 물론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여전히 설렌다. 내가 경험한 사랑의 기억 때문일 것이리라. 문득 지난 사랑에 깊이 감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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