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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02. 2016

금붕어, 기억을 담으려 애쓰다

오늘도 금붕어는 커피를 마시며 뻐끔거린다.

아주 소소한 일상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슬쩍 흘러가고 있다. 늘 그러했듯, 이렇게 묘한 기류는 언제나 먹구름을 동반하기 직전의 하늘과 같이 느껴진다.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이 불안정한 평화,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서 있기라도 한 듯 이 불편한 고요함은 무엇일까. 떨리는 기대감이 한꺼번에 엄습하며 빚어지는 불안감인지, 괜히 마음이 불안하게 설렜다.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 등을 구부리고 고개를 떨군 채 걸어가는 학생, 배낭을 메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람들. 강남역 9번 출구 앞은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다. 카페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자판기를 두드리는 나의 모습도 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흔적들 같이 작겠지.


작은 흔적들을 남겨보고자, 조금 더 깊이 있는 생각과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메모장을 하나 샀다. 마음에 드는 색깔이 딱히 없어서 채도가 낮은 핑크색 표지가 달린 두툼한 노트를 집어 올렸는데, 일반 노트 같은 종이 재질과 튼튼한 스프링이 마음에 들어 더 고민하지 않고 곧장 계산을 했다. 이제 여기에 인생의 조각들을 흩뿌려 놓겠노라며 그대로 가방 안에 넣었다. 

빵빵한 와이파이와 향 좋은 커피가 약속된 스타벅스에 자리 잡아 앉고 노트를 꺼냈다. 살 때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 몰랐는데, 첫 표지부터 건방진 표정에 시비조다. 


"너구나? 이 구역 금붕어가?"


그래, 난 금붕어다. 금붕어가 펜을 잡고 앉아 차분하게 글자를 적어내려가니, 아마 난 금붕어 중에서도 천재일지도 모른다. 채도 높은 핑크 색상 플라스틱 표지를 걷어 안 쪽에 조그맣게 이름과 생년월일, 핸드폰 번호를 휘갈겼다. 예쁜 데코, DIY에 전혀 재능이 없음을 다시금 확인한 후 페이지 몇 장을 뒤적였다. 적당한 곳에 날짜, 조금 오글거리는 글귀를 적었다.


2016. 08. 30 <토> 시작하는 아이디어 북#1 
1. 알아가는 것
2. 공부 중인 것
3. idea
4. 계획, 다짐
5. 상상
6. 낙서, 잡다한 것, 정리가 필요한 것
7. 일기, 단상
8. 듣고 있는 음악, 하고 있는 게임, 읽고 있는 책에 대한 것
9. 가계부(임시)


나와 관련된 모든 잡다한 것들을 욱여넣겠다는 생각으로 목차부터 적어두었다. 정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 이 내용들은 잊지 말고 담자는 금붕어만의 다짐을 한 번 더 쓴 것이다. 이 와중에 요일 개념을 잃어버린 나는 화요일을 토요일로 착각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한 번 더 내가 금붕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금붕어이니 반드시 기록해두기로, 어쨌든 모두 잊어버릴 테니 다 적어서 하나의 뇌를 다시 만들자는 나름대로의 포부를 다짐했다.


아메리카노가 참 썼다. 원두를 태운 것인지 오늘따라 입이 쓴 것인지 평소보다 좀 더 쓰게 느껴졌는데, 그 느낌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신경을 뒤흔들어 뇌를 깨워 주무르는 이 맛은 깔끔하고 강렬했다.


처음에 느낀 불안감은 아마 큰 설렘을 안고 있는 마음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전율을 느낀 것일 테다.

오늘도 금붕어는 커피를 마시며 뻐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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