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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긍정 Feb 12. 2023

테니스는 내게로 와 빠르게 꽂혔다

테니스가 왜 재밌냐고 물으신다면

누군가 “테니스가 왜 재밌어?”하고 묻는다면 게임의 명징함에서부터 이야기해야겠다. 테니스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직사각형 네모 안에서 공을 넘기며 하는 운동이다. 처음 시작은 테니스 라켓의 동그란 헤드를 네트 위에 모아 놓고 머리를 숙여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인사하며 시작한다. 가위바위보 하고선 이기는 팀에 공을 내어주는데, 먼저 공을 가지고 있더라도 가위바위보라는 냉철한 게임에서 진다면 주저 없이 내어줘야 한다.


주로 게임은 2:2 남녀 혼성으로 하는데 랜덤으로 짝을 지을 땐 어릴 적 편을 가를 때처럼 “무욱찌!” 하고 외치며 주먹을 모아 편을 가른다. 마치 어릴 적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술래잡기하던 그날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복식을 하면 같은 편 멤버와 공격과 수비 중에 무얼 할지 고른다. 주로 다들 공격을 하고 싶어 하는데, 대체로 서로 먼저 고르라면서 양보한다. 내숭이다. 수비와 공격이 자리를 잡고 나면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먼저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팀이 서브를 먼저 넣는데, 제일 큰 사각형 바깥의 오른쪽에서부터 대각선 반대편에 있는 상대의 사각형 안으로 공을 넣는다. 공이 사각형 안에 들어가면 게임이 시작되고, 사각형 라인을 한번 넘으면 폴트다. 두 번째 서버에도 사각형애 못 넣으면 더블폴트라고 해서 상대가 점수를 딴다. 룰은 간단하지만, 생각보다 공을 사각형 안에 넣는 게 간단하지가 않다. 공을 맞추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브를 넣으면 상대방이 너무 쉽게 반격해 점수를 잃고 만다. 

Photo by Renith R on Unsplash

내가 테니스를 좋아하는 면모는 이런 부분이다. 남녀에 상관없이 사각형 밖으로 나가 공이 아웃되면 점수를 잃는다. 아무리 힘이 세고, 키가 크고, 날쌘 발을 가지고 있더라도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 점수를 잃는다는 점이 한없이 공평하다. 테니스 코트 바깥세상에선 사람마다 가진 능력이나 위치에 따라 기준이 바뀌는 것 같은데 반해, 이곳에선 그 어떤 능력도 힘을 잃은 듯해서 마음이 놓인다.


또 스포츠는 대게 남자의 영역으로 여겨져 남자가 멋있는 때를 자주 접한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처럼 으레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에, 어렸을 때부터 선수로 키워진 운동 천재들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니스 코트 안으로 들어서면 운동하는 멋진 여자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자들의 공이 뻥뻥 날아올 때 중간에서 발리로 깎아 치는 모습이나, 빈틈을 보고 상대 선수가 손 쓸 수 없게 빠르게 공을 꽂을 때, 남자못지않은 날카로운 서브로 상대가 공을 넘기지 못하도록 서브에이스(서브를 빠르게 넣어 상대편이 못 받아 점수를 따는 걸 말한다.)로 점수를 따내는 여자들의 플레이를 볼 때면 박수가 절로 나온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언니로 보이고, 나도 아마추어 같은 테니스 초보티를 빨리 벗어제끼고만 싶다.


테니스를 치면서 테니스인들 사이에 3단계 질문형 칭찬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처음 만나 게임을 쳤는데, 생각보다 잘 치면 “구력이 어떻게 되세요?”하고 묻는다. 유사 질문으로는 “테니스 몇 년 치셨어요?”가 있는데 1년 이하라고 대답하면 “우와" 또는 ”올ㅋ” 하는 반응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괜스레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만약 여기서 더 게임을 했는데 훌륭한 경기력을 보인다면 “원래 운동하시던 분이세요?”하고 묻는다. 이런 말을 들으면 “아니요”하고 수줍게 대답하지만, 게임하는 내내 두둥실 떠 다니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최고의 칭찬은 말이 아닌데, 경기 중 훌륭한 서브를 넣거나 상대편에게 날카롭게 포핸드로 공을 꽂았을 때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런 날은 집에 가는 길에 남자친구 엽이와 서로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경기를 펼쳤는지 자랑하느라 서로의 말문을 막는다. 한참을 자신의 경기력을 자랑하고 나서야 대화가 끝을 맺는다.


요즘은 엽이와 함께 테니스를 치러 평일과 주말에 클럽에 나가곤 한다. 우리는 종종 “아, (탄식) 테니스 잘 치고 싶다”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데, 대게 게임에서 처절하게 지고 온 날 아쉬운 마음에 중얼거리곤 한다. 공이 네트를 넘어왔을 때 칼을 휘두르듯 팔을 휘두르면 가뿐히  테니스 공이 날아간다. 그 감각은 매일 느끼고 싶을 만큼 짜릿하다. 테니스를 잘 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잘 친다”라고 칭찬일색이어도 얻는 건 없다. 하지만, 돈하고 무관한 일에서 얻는 즐거움이 테니스에는 있다. 형광빛이 도는, 한 손에 착 감기는 테니스 볼, 이게 뭐라고 이토록 사람을 중독시키는 걸까.


Cover Photo by Mario Gog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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