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싶어 떠난 파리 여행기
브런치 북 발행하기에 전문(글자 수 5747자)이 많아서 5092자로 줄였습니다.
전문은 유튜브(하단 링크)에 직접 녹음한 내레이션과 현지에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서 올렸습니다.
어느덧 중년, 삶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싶어서 떠난 12일간의 나 홀로 파리 체류기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 조금씩 성장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유튜브 응원과 구독은 큰 힘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번잡스러운 곳을 피해 조용히 독립 서적 퇴고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어디를 가야 할까. 원고 수정하기에 좋은 조용한 카페를 찾아볼까?
세느강 주변의 예쁜 카페가 좋을까? 자주 가는 비스트로로 갈까? 구글맵을 살펴보던 중 몽파르나스역 바로 옆에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웬 공동묘지에 가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지만, 파리의 공동묘지는 무시무시한 느낌보다는 공원 같은 분위기다. 물론 뤽상루브 공원처럼 사람들이 선텐 하고, 술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횅한 우리의 공동묘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몽파르나스 묘지에는 사르르트와 보부아르, 모파상의 묘가 있다고 하니, 위대한 작가님들의 기운을 받아보고 싶다.
‘ 딱이네. 여기네 ‘
세상에 한 획을 긋고 떠나신 작가들이 쉬고 계신 곳에 가서 내 글에 대한 영감과 응원의 에너지를 좀 받아야겠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호텔을 떠난다. 아침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단골 카페에서 카페 알롱제를 한잔 마신다.
“ 봉쥬르, 즈브드헤 카페 알롱제 씰부쁠레 “
“ 봉쥬르, 위 “
신나는 일이다. 간단한 문장 하나 외워서 써먹는 것뿐인데 단골 사장님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카페 알롱제 한잔을 건네준다. 에스프레에 물을 넣어서 묽게 만든 커피에 각설탕 하나 정도 넣어주면 내가 마시기에 딱 좋은 아메리카노가 된다. 찌뿌둥한 몸에 카페인을 들이붓고 다시 힘을 충전한다. 어제 호텔 옆 지하철역 자판기에서 신용카드로 나비고 카드 충전하다 에러가 났다. 혹시 결제가 돼버린 것 아닐까 걱정이 된다. 외국에서는 기계보다 직접 사람한테 아이 컨텍하며 부탁을 하는 게 외국어 연습도 할 수 있기에 더 좋은 것 같다.
“ 봉주르, 즈브드헤 나비고 원 위크 실부플레 “
“ 위 “
말이 되든 안 되는 봉주르 붙이고, 내가 원하는 말 넣고, 마지막에 실부뿔레를 하면 파리 사람들이 찰떡같이 알아듣고 다들 친절하게 응대해준다. 왜 파리 사람들이 불친절하고 영어를 못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몇몇 사람들은 영어를 어찌나 잘하는지 너무 빨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을 만큼 유창하다. 파리에 와서 내가 먼저 영어를 써 본 적은 없다. 파리에 오기 전에 유튜브 채널 ‘야매 불어’ 진셈 강의를 5개 정도 들으며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문장을 귀에 익혔다. 야메 불어 채널에서 배운 몇 단어를 조합해서 간단한 문장이지만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고 있다. 역무원은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인데, 외모가 영화배우다. 즐거운 여행 하라고 인사를 건네주는데, 마치 파리 영화배우한테 인사를 받은 듯 기분이 좋다.
호텔 앞 지하철 M13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도착하는 몽파르나스 역. 지하철 출구를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몽파르나스 묘지가 보인다.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난 작은 입구를 통해서 묘지 안으로 들어선다. 처음이라 그런지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공원묘지의 구석은 숲이 울창하고 습기가 많아서 바닥이 좀 음습하다. 대리석 묘비가 수없이 놓여있는 공동묘지다. 도심 속에 이렇게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는 게 놀랍다.
일본에서도 주택가 바로 옆에 묘지가 있는 걸 봤는데, 파리에서도 도심 속에 공동묘지가 있다.
살아있는 자들의 공간 속에 죽은 자들이 함께하는 도시공동체인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입에 올리는 것도 꺼려하는 우리들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침 10시에 공원묘지에는 사람이 몇 명 보이지 않는다. 노인 내외가 묘 앞에 있는 제단 위에 올려진 화분에 물을 부어주는 모습이 보인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그 추억을 회상하는 것 같다. 마음이 애처롭다. 중년이 되면서 주위에 지인들이 한두 명씩 운명을 다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처음 보는 광경이라 슬쩍슬쩍 자꾸 쳐다보게 된다.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이곳에 모파상과 사르트르, 보부아르 부부의 묘가 있다는데, 너무 넓어서 찾을 수가 없다. 벤치에 앉아서 원고를 읽으며 퇴고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새소리가 들려오고, 공원 중앙길로 유모차를 끄는 아이 엄마가 지나간다. 죽은 자들의 공간에 얼마 전 태어난 새로운 영혼이 빛난다.
이어폰을 꽂고 원고를 작은 소리로 읽기 시작한다. 위대한 작가들의 영혼이 글에 몰입하게 기운을 주는 걸까? 몇 페이지를 넘기다 눈에 팍 꽂히는 문장을 만난다.
‘ 질문을 던지려 한다. 왜 태어났을까? ‘
“ 우리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냥 태어났으니 뭐, 그렇게 그냥 살다가 죽는 거 아냐?
뭘 그런 골치 아픈 걸 생각하냐? 술맛 떨어지게. 인생 뭐 있어? 그냥 오늘 밤 마시고 죽는 거야 “
평소에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면 대충 이런 분위기로 흘러간다. 왜 태어났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을 혼자 떠들어 본다. 모파상과 사르트르, 보부아르 같은 위대한 작가들 앞에서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삶에 대해 상담하듯 이야기를 꺼낸다.
“ 제 얘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저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한국에서 50년을 살아온 중년의 남자입니다.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제 마음과 제가 뒤늦게 깨닫고 있는 세상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또 공유하며 살고 싶어요. 선생님들은 워낙 유명한 작품을 많이 하셨고, 한 세상 원 없이 살다가 가셨잖아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
아무도 없는 조용한 몽파르나스 묘지의 어느 벤치.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듯 내려와 포근히 내 몸을 감싼다. 하고 싶은 말을 방언 터지듯 혼자 한바탕 떠들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 여기 진짜 좋네. “
괜히 먼데 갈 것도 없고, 남은 일정 동안 매일 이곳에 와서 퇴고 작업을 해야겠다. 2시간 정도 앉아서 글도 읽고 영상 촬영과 녹음을 했다. 몽파르나스 묘지를 나와서 루브르 쪽을 다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탄다. 파리 시내를 동네 마실 다니듯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여유로움이 좋다. 이제 꼭 가야 할 곳도 없기에 생각나는 데로 파리 시내를 걸으며 산책을 해보려 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을 가로질러 콩코르드 광장을 지난다. 1789년 파리 혁명이 일어나고 그 이후에 26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 나간 콩코르드 의미는 ‘화합’이라고 한다. 무서운 그 시절의 모습들이 뚝뚝 묻어난다.
세느강변에 붙어있는 둑길 같은 작은 숲길을 걷는다. 비가 푸득푸득 잎새 사이를 뚫고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나무숲 아래로 들어와 비 내리는 세느강변을 쳐다보며 감탄한다. 황금빛 조각으로 꾸며진 다리가 보인다. 구글맵을 검색해보니 저곳이 바로 ‘알렉산드르 3세 다리’ 라 한다.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 마지막 장면에 나온 다리다.
“파리잖아. 파리에서는 비를 맞는 게 더 운치 있는 거지. “
바람막이에 붙어있는 모자를 쓰면 되지만, 비를 슬쩍 맞으며 알렉상드로 3세 다리로 걸어간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지금 기분으로는 비가 지금보다 더 내려도, 그 비를 다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너며 주변 건물들을 바라본다. 이제 화려하고 예술적인 파리의 건물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불과 1주일 만에 익숙해진 걸까? 화려한 외향만으로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한계가 있는 듯싶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단골 술집에 들린다. 5시에 출근하는 스텝들의 얼굴이 보인다. 이 친구들은 꽤나 유쾌하다. 특히 아프리카 계열의 친구는 노는걸 엄청 좋아해서 내게 계속 말을 붙인다. 그 친구의 농담을 알아듣고, 자연스레 받아칠 수 있는 정도의 영어가 안 되는 게 조금 답답하다. 귀국하면 내가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영어 공부하는 방법을 만들어야겠다.
비스트로에서 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작은 공원에서 책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슬쩍 들어가서 휭 하니 둘러본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셀카봉에 카메라를 꽂고 지나는 사람들 얼굴을 찍는 건 상대에 따라서는 매우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떤 이는 여행자에 대해서 서비스를 해주는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모른척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척할 것 같다. 하지만 불쾌함을 느끼는 이는 항의를 하거나 매너 없게 욕을 할 수도 있다.
한국 유튜버가 셀카봉을 들고 촬영을 하는데, 화면에 찍힌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욕을 하는 장면이 잡힌다. 이 친구는 돌아보며 거세게 항의를 한다. 감정이 폭발한 듯싶다.
‘ 이건 인종차별이야. 한국인을 우습게 아는 거야. 나를 깔보는 거야 ‘
이렇게 생각한 것일까? 화면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 왜 그런 행동을 하셨어요? “
“ 어떤 의미인가요? “
“ 무엇 때문에 기분이 나쁘셨나요? “
매너 없는 그 외국인이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왜 그런 비 매너적인 행동을 했을지 물어보고 싶다. 언어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우선 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 사람이 자신의 얼굴이 찍히는걸 엄청 싫어해서 과민하게 반응한 것일 수도 있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파악하지도 않은 채 즉각적으로 폭발적 반응이 일어나면, 상황은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꼬인다. 상대의 생각을 물어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면 서로 오해를 풀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난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이들의 문화를 관찰하고 바라보는 게 중요하지 유튜브 영상을 찍어내기 위해서 카메라를 그들의 사적 영역으로 허락도 받지 않고 밀고 들어가는 것은 실례일 수 있다. 카메라는 심리적으로 총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나를 향해서 총구를 디민다고 생각해보자. 불쾌한 감정이 충분히 들 수도 있다. 그날 파리의 작은 공원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또다시 여행 영상을 찍을 기회가 있다면, 현지인들과 충분히 감정교류를 하며, 동의를 얻고 촬영할 수 있을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하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점점 잠이 늦게 들기 시작한다. 파리에 적응을 하기 시작하는 건가? 파리 시간으로 오후 8시에 잠이 들고, 새벽 4시에 잠에서 깬다.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시차 적응을 2시간 정도 한 셈이다. 1주일 지나면서 조금씩 시차 적응을 하는 것 같다. 참 빨리도 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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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어쩌다 파리 제7화 : 몽파르나스 묘지 ft. 모파상, 사르트르, 보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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