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싶어 떠난 파리 여행기
브런치 북 발행하기에 전문(글자 수 5776 자)이 많아서 4717 자로 줄였습니다.
전문은 유튜브(하단 링크)에 직접 녹음한 내레이션과 현지에서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서 올렸습니다.
어느덧 중년, 삶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싶어서 떠난 12일간의 나 홀로 파리 체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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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사는 걸 깜빡 잊어 아침까지 생수만 마시며 버틴다. 이상하게 몸에서 기분 나쁜 한기가 느껴지며 재채기가 연속 4번 나온다. 느낌이 불길하다.
‘ 뭐야, 감기 걸린 거야? 에어컨 켜 놓고 자서 그런가 ‘
삭신이 쑤시고 몸이 찌뿌둥하여 침대에서 꼼짝하기 싫다. 황심소(유튜브 심리상담 채널 이름) 방송을 들으며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 갑자기 한식이 먹고 싶다. 9일째가 되니 한국음식이 생각난다. 이런 걸 향수병이라고 하나? 침대에 누워 파리 한식집 포스팅을 검색한다.
‘ 점심은 한식으로 먹어볼까? 한식 먹으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
오페라 부근의 한식집이 가격도 적당하기에 그곳으로 가려 마음먹었는데, 눈에 탁탁 걸리는 후기가 보인다. 손님이 오면 미리 만들어 놓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내주는 곳으로 외국인 상대로 하는 테이크아웃점으로 보는 게 좋을 것이라는 글이다. 특히 미역국이 조금 상한 것 같다는 글을 보니 움찔하다. 여긴 아닌 것 같다.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프랑스 대중식당 ‘카르티에’의 경우는 저렴한 가격이지만, 데워서 주는 게 아니라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부터 조리에 들어간다고 한다. 개업 후 오랜 시간 동안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박리다매로 식사를 제공하지만, 음식 주문 후 조리를 한다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지 않을까? ‘카르티에’에서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원칙을 지킨다는 철학이 있다고 믿고 싶다.
15구역 숙소에서 가까운 ‘송산 식당’이라는 한식집이 눈에 들어온다. 13구역의 베트남 쌀 국숫집을 갈까 했지만, 점심은 한식이 당긴다. 왠지 한식을 먹으면 컨디션을 회복해서 기운이 날 것 같다. 점심메뉴를 정했으니 아침 먹을 것을 사러 밖으로 나간다.
7시 30분, 단골 비스토어 앞에 있는 작은 빵집에 냉큼 달려간다.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매번 바뀌는 걸로 봐서 교대하는 사람들이 꽤 여럿 있는 듯싶다. 이른 아침에 일하는 스텝은 혹시 빵 만드는 기술자가 아닐까?
“ 봉쥬르 “
“ 봉쥬흐, 즈브드해 앙 크화상, 앙 초코 씰부뿔레 , 쎄꽁비앙 “
알고 있는 불어를 모조리 연결해서 나름 제법 긴 문장을 만들어 말해본다. 내 발음이 희한하게 들리나 보다. 남자 셰프가 웃는 건 아니지만 웃음을 슬쩍 머금은 채 가격을 말해준다. 은근한 미소가 있는 친절한 친구다. 호텔방으로 돌아와 따끈한 크루아상을 입에 쏙 넣어본다.
‘ 진짜 맛있다 ‘
‘ 아침에 갓 만든 크루아상, 이게 진짜 파리의 빵이구나 ‘
따끈따끈 갓 지은 밥 같은 느낌이랄까. 아직도 따끈한 온기가 느껴지는 크루아상은 입에 폭신하게 감기는 식감과 고소함이 일품이다. 초코시럽이 들어가 있는 크루아상은 달콤한 매력이 있다. 프랑프릭스에서 구입한 2유로짜리 오렌지 주스의 신선함은 또 어떤가. 생수만 먹다가 신선함이 뿜 뿜 느껴지는 오렌지 주스와 함께 마시니 늘어져있던 몸과 마음에 활력이 샘솟기 시작한다.
‘ 그래, 이 느낌을 몰아서 여행의 마지막까지 기운을 내자, 낮에 한식 먹고 파이팅하자고 ‘
파리의 한국식당 중 베스트 3위 안에 들어가는 파리 맛집. 걸어서 15분 거리로 호텔에서 멀지 않다. 맛이 깔끔하다는 구글 리뷰가 많다.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꼭 토를 다는 사람들이 있다.
종업원이 불친절하다, 공깃밥을 하나 더 달라고 하는데 싹싹하게 대하지 않았다, 돈을 더 낼 테니 반찬을 더 달라고 했는데 친절한 대우를 못 받았다는 등 인터넷에 올라오는 불만은 다양하지만 비슷하기도 하다. 고객이 요청하면 한국에서처럼 알아서 응대해주고 만족할 때까지 무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파리는 불친절한 도시다. 기름을 쪼옥 뺀 음식처럼 스텝들의 서비스는 담백하다.
달리 생각해보면 파리 사람들의 서비스가 뷸친절한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서비스가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는 것이지, 자신의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게 서비스의 에센스는 아닌 것이다.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손님은 만족할 때까지 서비스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대량 판매를 위해 고객감동 서비스를 제공해온 대기업 마케팅과 한국사회의 인간관계에 있어서 권위적인 태도가 만들어낸 문화 아닐까?
송산 식당은 햇볕이 잘 드는 삼거리 상권에 위치해있다. 시계를 보니 11시 55분, 오픈 시간 5분 먼저 도착해서 가게 앞에 세워놓은 메뉴판을 슬쩍 살펴본다. 피곤으로 얼굴빛이 쾡한 청년이 식당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한국인 같은데 표정이 좀 칙칙하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되나요? “
“ 네. 들어오세요 “
한옥 스타일이 아니라 프랑스 식당 분위기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서진이 나오는 리얼 예능 ‘스페인 식당’이다. 한국음식점이 낯선 파리에서 당당하게 한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보니 내 가게도 아닌데 뿌듯하다.
“ 전체, 메인, 디저트 어렵네요. 전 세트메뉴로 할게요. 오징어볶음 세트로 주세요 “
“ 네, 알겠습니다 “
한국말로 주문을 하는 게 마음 편하다. 한국에서는 분식집에서도 나오는 음식인데 파리에서는 야채샐러드, 오징어볶음, 3종 반찬, 우롱차 이렇게 세트로 구성해서 15유로, 한 끼에 2만 원 정도 한다. 카드 계산까지 가능하다. 12시가 넘어서자 손님이 한두 명씩 들어온다. 대부분 현지인들이다.
파리의 핵심 관광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관광객은 보이지 않는다.
후기에 보면 키 작은 여자 종업원이 싹싹하다고 하던데, 그분이 주문받아주니 아는 사람 만난 듯 반가웠다. 호들갑스럽게 반겨주는 응대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말도 안 통하는 파리에 도착해서 한국음식이 그리워 이곳까지 찾아온 한국 여행자들이 바라는 기대는 각자 다양할 것이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사이로 보이는 아재의 한국말은 참 딱딱하다. 식사를 다하고 나니 테이블에 와서 짧게 말을 건넨다.
“ 식사 다하셨어요? “
“ 네 “
“ 치워드리겠습니다. “
스윽 접시를 치워간다. 한국에서 식사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도중에 그릇을 치워가면 빨리 나가란 뜻으로 오해할 수 있다. 코스요리니까 테이블을 정리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런 서비스에 당황하는 것 아닐까? 홀에는 손님이 2 테이블 정도만 있었고, 빈 좌석은 충분히 많았기에 테이블을 빨리 회전시키려 하는 건 아니다. 처음 갔었던 프랑스 요리점 까르티에도 다 먹은 접시를 두면 바로바로 치웠다. 식당 냉장고에 카스맥주, 진로 소주가 가득 들어있다. 가격이 얼마일까?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으니 기운이 난다.
“ 맛있게 드셨어요? “
“ 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거 같네요 “
슬쩍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 잘 먹었습니다 “
“ 감사합니다 “
인사를 하고 세느강변 방향으로 걸어간다. 날씨 참 좋다.
파리 도착 3일 차 되는 날에 에펠탑에 갔고, 그때 내렸던 역이 비르 하켄 역이다. 역사 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로봇 몸통처럼 보여 신기했다. 교과서에서 보던 사진 그대로 풀밭에 우뚝 솟아있는 에펠탑을 본 순간, 감동의 눈물이라도 찔끔 흘릴 줄 알았지만, 의외로 덤덤했다. 비르 하켄 다리는 잠수교처럼 이중으로 되어있는 다리다. 영상을 봐야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2층에는 기차가 다니고, 아래쪽으로 차량이 지나다니던 것 같다.
잠수교 같은 다리에 차량이 쎙쎙지나는데 관광객들이 무단횡단을 한다. 그들을 따라 나도 무단 횡단했는데, 운전자 입장에서는 꽤나 신경 쓰이는 구간일 듯싶다. 교통사고가 생길 수 있는 위험구간이다. 다리 끝쪽으로 가면 건너는 횡단보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안전하게 돌아서 건너는 게 좋다. 슬슬 한국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 한 장을 부탁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나 혼자 찰칵 찍는 게 속편 하다.
다리를 건너 에펠탑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베스트 포토존을 찾아간다.
여기는구나. 한국 관광객들은 샤오 궁에 다 모여있는 듯싶다. 난간에 올라 멋진 포즈를 취하는 젊은 여성들, 다들 한 모델한다.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대 너머로 보이는 에펠탑.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영화 포스터 같은 배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파리 여행 가이드 비니 비니 빈스가 ‘팔레드 도쿄’에서 바라보는 에펠탑이 가장 예쁘다고 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일부러 찾아갔다. 비니 비니 빈스가 나오는 유튜브 채널에서만 보던 실제 그 장소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 기회가 되었으면 빈스를 꼭 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개인 사정으로 투워 스케줄이 잡혀있지 않다고 해서 못내 아쉬웠다. 샤오 궁에서 멀지 않은 상제리제 거리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상제리제 메인 거리가 아닌 살짝 옆으로 비켜난 거리에 명품샵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명품 쇼핑에 관심 없기에 사진 몇 장을 찍고 지나친다. 명품샵 근처에 오니 한국 관광객들이 제법 눈에 보인다. 이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늘색 라인 M13은 이제 헷갈림 없이 원하는 지하철 역 방향을 잘 찾아다닐 수 있다. 이 정도면 거의 현지인이 다 된듯하다. 마치 오사카를 헤집고 다니던 2008년 여름이 생각난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앞으로 이런 여행을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행복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비즈니스에 대한 고민이 밀려오겠지만, 이번에 찍은 동영상과 원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만들려 한다. 남은 기간도 건강 잘 챙기며 일정을 끝까지 잘 소화하자.
팟캐스트를 몇 개씩이나 듣다가 겨우 저녁 11시에야 잠이 들었다. 며칠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제야 시차 적응을 하고 있다. 9일 차의 밤이 저물었다.
21년에 구독자 천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힘이 되어주세요. ^^
독립영화 어쩌다 파리 제9화 : 향수병/ 미라보 다리/ 자유의 여신상/ 비르 하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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