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싶어 떠난 파리 여행기
어느덧 중년, 삶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싶어서 떠난 12일간의 나 홀로 파리 체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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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도 못하는데 혼자서 2주 동안 생활할 수 있을까? 밥이나 잘 챙겨 먹을 수 있을까. 혼자 방에 콕 박혀 있다 오는 건 아닐까. 12시간 비행을 잘 견딜 순 있을까. 수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그런 걱정을 싹 정리할 수 있었던 몇 가지 호기심이 있었다. 30년 동안 머릿속 어느 곳엔 가 숨겨져 있었던 궁금증 세 가지. 첫째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팔찌 강매를 한다는 ‘흑형 사기단’의 정체 , 둘째는 소매치기당할까 봐 불안해하지 않고 여행하는 게 가능할지? 셋째는 파리 여행할 때 걱정할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각한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피 같은 돈을 몽마르트르 언덕 흑형 팔찌단에게 털렸다는 이야기가 그 옛날 여행 동우회에서 자주 거론되었다. 소매치기당하지 않으려면 배낭에 자물쇠를 꼭 채우고 절대 한눈팔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도 있었다. 혹시 길에서 누군가 아는척해도 정신 팔지 말고 모른척하라는 팁들이 여행 선배들로부터 전수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세월이 3바퀴나 돈 2019년. 요즘 젊은이들이 활동하는 여행 동우회에 들어가 보니 여전히 파리에서 당한 인종차별, 흑형 팔찌단 강매 스토리,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소매치기당했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그 진짜 이유가 궁금해졌다. 얼마나 가고 싶었던 파리인데, 이런 이야기가 여행에 대한 우리들의 로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내 두 눈으로 그들을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준비는 이런 거였다. 영상 촬영을 위해 액션캠을 사려했지만, 분실하거나 소매치기당해도 상관없는 5년 전 구입한 캐논 똑딱이 미러리스 카메라를 쓰기로 했다. 여행 중에 사용해보니 배터리 용량이 오래가지 못해 사진 350장만 찍어도 방전이 돼버려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특히 액정화면이 회전할 수 있는 방식이 아녔기에 얼굴을 보며 브이로그 촬영을 하기 에 적합하지 않았다. 화질의 경우도 손떨림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이 기능적으로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폰 경우 전문 카메라에 비해 아웃포커스 기능이 약해 주변 사람들 얼굴이 그대로 나오기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아예 삭제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역시 해보니까 알게 된다.
지난 11일간 파리에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여행이 날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뭘 하기만 하면, 어떤 곳을 가기만 하면, 뭔가를 소유하기만 하면 내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 그 어느 곳을 가도 나는 나일수밖에 없다. 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나는 바뀔 수 없는 것 같다. 마음이 도대체 뭐길래? 내 마음이 뭔지 알게 되면 문제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란 뭘까?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느냐. 그것이 마음이다. 그 믿음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나의 행동과 태도가 결정되는 것 같다. 낯선 파리에 와서 느낀 건 남들의 시선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 속에 ‘관종’ 심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리를 향해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가끔씩 고개를 들어 지나는 사람들을 쳐다볼 때, 묘한 느낌이 든다. 세상의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과 또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만의 공간에서 누리는 편안함을 느꼈다.
길가 테이블에 앉아 아침 8시 30분에 신문을 보는 저 청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출근 준비에 서둘러야 되는 거 아닐까? 아니면 이곳은 청년의 회사 근처 단골 카페일까? 아침의 풍경이 이토록 흥미로운 것인 줄 알았다면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실걸 그랬다. 아침마다 카페를 오기는 했지만 카운터에 서서 알롱제 한잔을 마시고 금방 떠났다.
1주 차에는 시차적 응이 전혀 안돼서 파리 시간 새벽 2시, 한국시간으로는 아침 9시에 일어났다. 오후 5시가 되면 숙소에 들어와 맥주나 와인을 한잔하고 비행기에서 준 안대와 귀마개 도움을 받아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파리의 저녁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묵은 호텔은 시내의 오래된 호텔과는 다르게 에어컨도 잘 나오고 실내도 깨끗한 반면에 방음은 좋지 않았다. 옆방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리고, 특히나 밤중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가 벽을 통해 웅웅 거려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술 먹은 무리들이 싸우는 소리인 줄 알았다. 며칠 지나서야 옆방에서 들려오은 텔레비전 소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게스트하우스라면 어땠을까?
숙소를 호텔로 정하는 것은 비용적인 측면에서는 좀 부담이 간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글 쓰기를 매일 할 수 있었다. 파리의 와인 가격은 어찌나 쌌는지 6유로 정도면 맛난 와인을 두고두고 꼴짝 꼴짝 마실 수 있었다. 술 마시게 되면 다음날 응꼬를 2번 해야지 깔끔한데, 혼자 방을 쓰다 보니 화장실 걱정 안 하고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여행을 어디를 가든 화장실 문제가 내 발목을 잡을 것 같다. 만약 게스트하우스를 가게 된다면 아마 산티아고 순례길일 텐데 공동숙소에서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파리는 글쓰기에 훌륭한 공간이다. 한국에서는 스타벅스에서 가끔 글을 쓰곤 했는데, 각 지점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답답하게 막혀있지 않으면서 오픈된 공간, 사람들을 쳐다볼 수 있고,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서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그런 무심한 공간이 있다면 일주일에 두어 번 찾아가서 글을 쓰고 싶다. 어디가 있을까? 남산 쪽에 그런 카페가 있지 않을까? 글을 쓸 수 있는 단골 카페가 한 군데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씩 이렇게 내 생각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다.
불어 단어 몇 개로 돌려막기 하며 파리에서 재미있게 2주를 보냈다. 제일 많이 써먹었던 프랑스어 몇 가지를 이야기하면 이렇다.
“ 즈브드헤 꺄페 알롱제 씰부뿔레 “
“ 메흐시 “
“ 파흐동 “
“ 우쏭 레또알레 “
“ 쎄꽁비앙 “
“ 앙, 드, 트화 “
딱 요거 가지고 다 써먹고 다닌 듯싶다.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파리에서 만난 파리지앵은 친절했다. 어제 백화점에서 만난 파리 계산원이 불친절하지 않았냐고? 내 대답은 이렇다.
“ 농 “
불친절한 게 아니라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전 세계 국가에서 찾아온 수많은 관광객들의 행동에 대응하는 것에 지쳐 피곤해 보인 건 아닐까? 이런 거다. 백화점 계산원은 서서 일하지 않고 앉아서 일하고 있었다. 상품을 잔뜩 넣은 바구니를 움직이는 롤러 위에 올려놓았는데, 계산원이 계속 뭐라고 툭툭 거리듯 이야기한다.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하며 분위기를 살핀다. 주변 상황을 돌아보니 손님이 직접 바구니에 담긴 상품을 빼서 움직이는 롤러판위에 올려놓으면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어서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계산원이 나에게 하는 소리가 퉁퉁 거리며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차별당했다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일하는 직원도 손님과 대등한 느낌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신선했다.
캐셔가 바코드를 찍기 좋게 손님이 협업으로 도움을 주면 계산도 빨라지고, 캐셔의 수고도 덜 수 있게 된다. 바구니에서 상품을 빼내 주는 별도의 직원을 추가로 채용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에 돌아온 후, 마트에서 계산할 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바구니에서 상품을 빼서 롤러 위에 올려둔다. 파리에서 배워 온 라이프스타일이다.
사람을 권위적으로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다르게, 파리는 서로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권위적인 태도가 많기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수많은 어려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하루켄
11일 차 독립영화 어쩌다 파리는 10.25 ~ 29일 사이에 등록됩니다.
https://blog.naver.com/seoulharu/222545645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