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국제도서전 : 믿을 구석> 현장의 기록

by 화유

여행 가는 날 아침처럼, 소풍을 떠나는 버스에서처럼 그렇게 설렜다.

가고 싶은 목적지를 적듯, 가고 싶은 부스와 사고 싶은 책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었다.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는 백팩, 손선풍기, 시원한 물, 편한 옷차림과 신발.. 빠진 것은 없는지 살피고 또 살핀 후 비로소 출발할 수 있었다.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진마다 전시장 앞을 가득 메운 긴 줄이 눈에 들어왔다.

'대기가 길어요', '아직도 못 들어갔어요', '30분째 기다리는 중이야'….기다림을 전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10시부터였지만, 아이 등원을 하고 출발한 탓에 40분이 지나서야 겨우 주차장에 도착했다. '조금 늦은 게 다행인가?' 생각이 드는 찰나 눈앞에 보이는 인파를 보곤 그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사진 속 인파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의 긴 행렬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제법 많은 인파 속에서 준비해 둔 선풍기를 꺼낼까 말까 망설이던 그때쯤, 행사 데스크가 눈앞에 나타났다. 예매 내역을 보여주고 입장 팔찌를 받는 순간, 공항 체크인하던 장면이 겹쳐졌다. 마치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아이 하원까지 3시간 반. 느긋할 틈도, 멈춰 설 여유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선 대형 출판사들이 모여있는 A홀 27번 구역으로 갔다. 11시쯤이었니까, 전시회 시작부터 약 1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유명한 민음사, 문학동네 등의 부스 앞은 이미 많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입장 줄에서 느낀 기 빨림을 연달아 겪고 싶진 않았다.

비교적 덜 붐비는 부스들부터 공략하며 체크리스트를 지워나갔다. <읽는 사람> 부스에서 받은 대형 타포린 백 덕분에 이번 전시회를 두 손 가볍게 편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


처음엔 사진 찍기에 바빴다. 예쁜 부스들을, 다녀온 부스들을 '나 여기 다녀왔노라' 표식처럼 남기기 바빴다. 각종 체험과 사은품을 받는 동안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갔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람객들 사이의 대화가 들렸다.


"난 이 책이 참 좋았어.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고 너무 좋은 거야."

"그래? 내가 지금 읽어도 좋을까?"

"응, 지금 너 떠날 준비를 하고 있잖아. 딱이지"


무슨 책을 들고 있는지 슬쩍 보고 싶었지만, 우리 사이에 얽힌 다른 이들에 가로막혔다. 그들을 뚫고 가기란 당신들 얘기를 듣고 있었다는 광고를 하는 것만 같아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아직도 그 책의 제목이 궁금하다. 친구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었던 그 책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알아차리고, 내 상황에 맞는 책을 추천해 줄 수 있는 이가 내 곁엔 있을까?


전시회나 미술관처럼 자극이 많은 곳에 갈 때면 그것을 다 기억하기란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단 하나만 기억에 남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선이 멈추는 곳, 마음이 머무는 순간. 그 자리.


다녀온 장소보다 그때 눈에 담긴 한 장면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이번에도 역시 그들의 대화가 남겨졌다. 그 순간에 떠오른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날, 시선이 머문 곳


1. 읽는 사람(A홀 E27)

"QR코드 찍고, 레터 신청하시면 소전 300권 포스터를 드립니다"

포스터를 받을 요량으로 QR코드를 찍고,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주소 입력..?


"이메일이 아니라 집 주소 적는 거 맞아요?"

"네 맞습니다. 우편으로 보내드려요."


그렇다. 당연히 떠올린 이메일 뉴스레터가 아닌 페이퍼 뉴스레터였다.

요즘처럼 우편이 귀한 때에 페이퍼 뉴스레터라니!

잊고 있던 기다림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https://www.instagram.com/the_reader.or.kr


2. 나무말미(B1홀 Q9)

나무말미 부스에서 눈에 띈 『거짓말』 - 시 다니카와 슈타로 / 그림 나카야마 신이치

작고하신 다니카와 슈타로 시인은 신진 그림 작가들의 성장을 위해 꾸준히 협업을 해왔다고 한다.

배경 지식을 설명해 주니 출판사가 책에 가진 애정도 함께 느껴졌다.

그 설명을 들은 뒤 책장을 넘기자, 단어보다 마음이 먼저 읽혔다.

https://www.instagram.com/namumalmi_publisher


3. 카페 테일x알라딘 커뮤니케이션(B1홀 U11)

3시간쯤 돌아다녔을까. 발뒤꿈치가 쿡쿡 쑤시며 제발 그만 걸어달라고 소리칠 때쯤 알라딘 카페 부스로 향했다. 생각만큼 사람이 많았고, 당연히 앉을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걷고 또 걷다가, 그제야 좀 멈출 수 있는 곳이었다. 결제 시 알라딘 적립금과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독서가들의 자본이 선순환되는 느낌이었다. 주문한 커피는 생각보다 빨리 나오고, 더위에 지쳐있던 탓에 맛도 두말할 것 없이 좋았다.

https://www.instagram.com/aladinbook


4. 윌라(A홀 D9)

이번 도서전에서 남은 책 한 권을 고른다면 단연 김금희 작가의 『첫여름, 완주』를 꼽을 것이다.

『첫여름, 완주』의 출판사인 무제x에피케 부스에서는 인파ㅡ박정민 대표의 인기와 콘텐츠의 힘으로ㅡ가 너무 몰려 체험도, 구경도 할 수 없어 아쉬웠는데 뜻밖에 마주친 윌라에서 경험하게 됐다.

오디오북은 그냥 글을 낭독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안일함이 부끄러워질 만큼 다양한 음향과 성우•배우분들의 실감 나는 연기에 눈을 감고 영화를 듣는 느낌이었다.

잠들어있던 감각이 개화하듯 깨어났다.

https://www.instagram.com/welaaa_book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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