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에 선 사람들에게

어쩌면 커다란 용기

by 화유

출발선이라는 말은 가볍지만, 묘하게 부담스럽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 같고, 늦은 것 같고, 나만 멈춰 있는 기분. 준비는 하고 있는데, 여전히 출발선 앞에만 계속 서 있는 것 같다. 시작조차 쉽지 않다.

SNS나 미디어에선 모두가 무언가를 해내고, 자랑하고, 결과물을 보여준다. 반짝이는 성과들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준비 중'이라는 말 뒤에 머물러 있다.

댓글을 통해 다양한 시선을 접한다. 감정의 결은 제각각이지만, 그 속에서 문득 내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던 즈음, 약 두 달간 진행한 강의에서 비슷한 감정을 다시 마주했다.

학교밖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드로잉 수업이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학교를 나온 아이들, 혹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려는 아이들이었다.

처음엔 여느 때처럼 교안을 작성하고 수업 자료를 준비했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아이들과의 대화가 수업의 중심이 되었다. 어색했던 분위기는 조금씩 풀렸고, 우리는 어느새 강사와 수강생이 아닌 쌤과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물었다.

"어른들은 왜 자퇴한 사람을 안 좋게 봐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전에는 평범하지 않으면 문제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있었거든. 적응하지 못하는 걸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의 너희를 보면 그런 생각은 사라질 거야. 오히려 멋지다고 생각할걸?"

말하는 내내 긴장됐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누군가에게는 진심으로 닿기를 바랐다.

그 아이들은 매일같이 이 자리에 왔고, 자기만의 속도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이 꽤 멋있었다. 누가 봐도 '출발선'이었고, 그 앞에 선 이들이었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브런치 작가로 첫 글을 올리던 날, 키보드에 손을 얹고 한참을 망설였다. '부족한 건 아닐까, 누가 보긴 할까, 이 정도도 괜찮을까.' 마음속에서 수많은 검열이 오갔다.

고민 끝에 결국 올렸고, 그날이 있었기에 지금도 쓰고 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확실한 출발이었다.




출발선은 누가 먼저 서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출발선은 '처음'이 아니라 '용기'라는 이름이다. 나를 억누르려는 관성을 떨쳐내고, 주변의 시선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 그게 출발선이다.


출발선에 선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다. 하지만 그 불안은, 움직이려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감정이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원하는 방향이 있다면, 얼마든지 나만의 속도로 달려도 괜찮다. 잠깐 멈춰도, 숨을 돌려도, 신발끈을 고쳐 묶어도 괜찮다.


오늘도 나는 다시, 출발선 앞에 선다.

내 걸음이 닿는 그곳이 어디든 괜찮다는 마음으로.



사진: UnsplashN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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