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나를 살린 자리
한 평 남짓한 공간.
작년 이맘때쯤부터 사용한 사무실의 크기다.
2023년과 2024년은 내게 많은 고비와 시련을 안겨준 해였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시간들이었다.
그 무렵, 사업이라 하기엔 작고 조용한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혼자만의 도피처가 필요했다.
그럴싸한 핑계를 앞세워 빌린 이 공간은 어느새 읽고, 쓰고, 머무는 자리가 되었다.
책 한 권, 짧은 메모, 마음을 내려놓은 순간들.
무언가를 이뤄내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AM 10:00
사무실 도착.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고, 다이어리를 펼친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차례대로 써 내려간다. 중요한 일보다 자잘한 잔업을 먼저 처리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일에 쓸 시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시간을 생략한 채 바로 일에 들어가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계속 떠올라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가 없다.
처음엔 내가 집중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우선순위를 모르는 거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 시간은 내게 꼭 필요한 '예열의 시간'이었다는 걸.
예열의 시간을 당당하게 적기 시작한 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를 온전히 나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는 이야기다.
PM 1:00
간단한 식사 후 책을 펼친다. 읽던 책을 이어가지 않고, 그날그날 눈에 들어오는 책을 고른다.
시간을 정해두진 않고, 읽히는 만큼만 읽는다. 읽다 보면 어김없이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밑줄을 긋다 보면, 쓰고 싶은 문장도 만난다.
필사는 내게 숙제처럼 느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각 잡고 쓰지 않게 되었다. 대신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기고 싶은 문장만 골라 적는다. 휘발되지 않은 문장은 소화되어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이따금 그 주제에 매료되면, 일기든 SNS든 어떤 형태로든 기록한다. 마치 사진을 찍듯, 그렇게 기억한다.
쌓인 문장들과 마음의 흔적들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를 꺼내주는 도구가 되어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이 조용한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바꿔주고 있었다.
살아냈다고 말하긴 쑥스럽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오늘도 한 평짜리 이 공간에 앉았다.
하루치 할 일을 마쳤고, 읽고, 쓰며 틈틈이 나를 들여다봤다.
그걸로 충분한 하루였다.
@사진: Unsplash의 Hannah Olin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