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피프티피플>
가끔 들러리가 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작게는 어떤 모임, 크게는 어떤 단체나 조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몇몇 소수로 정해져있고 나는 지나가는 행인 1,2,3 중 하나. 하다못해 내 인생에서 만큼이라도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내 인생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욕망과 그들과의 관계가 얽히고 섥히다보면 그 마저도 쉽지 않다.
실제 삶조차 그러한데, 삶을 하나의 스토리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더욱 그런 식이다. 몇몇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고 지나가는 행인 1,2,3 과 짧은 에피소드가 있긴 하지만, 결국 엔딩은 그 주인공의 시점에서 해석되기 마련이다. 그 에피소드를 통해 주인공은 거듭났고, 행복했다더라, 아님 벌 받았다더라로 끝이 난다. 그래서 행인 1,2,3 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힘 있게 펼쳐나가는 스토리. 주인공의 시점에서 빠르게 사건이 펼쳐져나가고, 행인 1,2,3 과의 에피소드는 주인공이 무언가를 겪고 성취해나가는 과정의 일부다. 행인 1,2,3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그 다음에 주인공이 어떻게 되는지, 이겼는지, 극복했는지, 나아갔는지 그게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쭉쭉 스토리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에피소드를 묘사하거나 제자리에서 맴도는 이야기는 더 읽기를 멈춘다. 초반은 재밌었는데 중반부터 지지부진하다, 라며.
책 <피프티피플>은 그런면에서보면 지지부진할지도 모른다.
스토리를 쭉쭉 뻗어나가기 보단, 수많은 작은 점들을 반복해서 찍는다. 책 제목 그대로 50명의 사람들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들을 모아놨다. 내가 오늘 출근 길에 탄 지하철 옆 자리 쩍벌남의 이야기, 그 쩍벌남이 산 모닝 커피 카페 알바생의 이야기, 그 알바생의 상사 이야기, 그 상사의 어머니 이야기, 어머니의 친구 이야기.. 행인 1,2,3,4,5.....50 명까지 행인들로만 구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흥미로울 수 없다. 그 작은 점들이 점에서 끝나지 않고 어떻게든 얽히고 섥혀있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수많은 점들은 아주 희미한 선으로 이어져 복작복작 사람 냄새를 풍긴다.
이 책은 장강명 작가에게 추천을 받았었다.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었는데, 수업에서는 정세랑 작가의 다른 책인 <재인, 재욱, 재훈>도 예시로 나왔었다. '인물의 캐릭터를 설정'하는 주제의 강의였던 것 같다. <재인, 재욱, 재훈>은 주인공이 세 명인데 이 책은 주인공이 50명, 한 명에게 할당된 페이지는 3-4장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장 안에서도 인물을 느낄 수 있었다. 정세랑 작가는 한 인물을 다채롭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점 같은 존재라도, 각각의 캐릭터가 있고 각각의 스토리가 있다는 걸 이렇게 잘 표현해주다니 말이다.
50명 중 가장 좋았던 사람은 진선미라는 여자로 영린의 새엄마다.
호탕하다고 해야할지, 자신감이 넘친다고 해야할지, 무척이나 단순하고 건강하다고 해야할지. 영린이 몇년 동안 찾아낸 설명은, 새엄마가 비극을 처리하는 하수처리장 같은 걸 잘 갖춘 사람이라 순식간에 약을 풀고 필터를 돌려 비극을 비극 아닌 것으로 처리해낸다는 것이었다.
"있잖아, 마음에 갈증 같은게 있는 사람은 힘들다" 영린과 함께 산지 얼마 안되어 새엄마가 말했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져. 내가 보기엔 네가 힘든 게 몸무게 때문도 아냐. 마음 때문이야.마음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네가 크면서 해결해야겠지만, 몸무게 때문에 더 힘들면 그건 지금 해결해보자. 돈으로 못 빼는 살이 어딨니?"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책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송수정의 엄마. 수정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엄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었다. 엄마의 시점에서 본 이야기도 궁금했는데 끝내 나오지 않았다.
예식장은 그 부근에서 가장 좋은 곳이었다. 신부 대기실에서 식장 입구가 보였다. 그야말로 성장한 엄마의 친구들이 엄마만큼이나 결연한 얼굴로 문을 밀고 들어왔다. 너를 위해 예쁜 옷을 입었어, 그런 느낌인 걸까. 볼륨을 넣은 머리와 진주 귀고리, 실크 스카프와 자개 브로치들이 식장 입구를 가득 채웠다. 수정이 아는 얼굴도 많았지만 전혀 모르는 얼굴도 많았다. 엄마는 그 가운데 서서 수정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가장한 장례식이었다. 근사한 장례식이었다.
누군가 한복 칭찬을 한 모양이었다. 엄마가 고전무용을 하듯이 한쪽 손을 멋들어지게 들고 그 자리에서 장난스럽게 한바퀴 돌았다.
사락사락.
아마도 그런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때 자기도 모르게 수정은 울컥하고 울었다. 나중에 이날을 기억할 때 엄마가 도는 저 모습이 기억날 거란 걸 수정보다 수정의 눈물기관이 먼저 깨달은 것 같았다. 아, 어떡해. 장갑으로 얼른 눈가를 훔쳤다. 하지만 나쁘지 않잖아, 수정은 생각했다. 엄마의 강인함도, 엄마가 맨날 부리던 억지도, 이상하게 저 사락사락함으로 기억날 것만 같으니까.
송수정부터 중반부까지는 계속 울면서 읽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단 3-4페이지에 담았는데 그것이 어쩜 그렇게 절절하고 아플까. 책으로 그 사람 인생의 한 단편만 봐도 이런데, 누군가의 인생 전체는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아픔과 기쁨과 슬픔과 행복이 있을까. 그렇게 소중한 하나하나의 사람들이 모여, 또 하나의 이야기를 쓴다. (이 부분은 직접 책으로 읽어봤으면 한다.) 주인공 한명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점들이 모여서 말이다.
또 좋았던 건 책 곳곳에 우리가 맞딱들이는 진짜 사회 문제들을 다룬다는 거다. 그것이 억지스럽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 문제가 중심이 아니라 그 인물에게 중심이 맞춰져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인물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인물이 '살아가는' 동안 문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층간소음에 대해서, 시철과 혜린
그보다는 설핏 잠이 들려하는 혜린을 깨워 묻고 싶었다. 우리도 그렇게 변하면 어쩌지? 엉뚱한 대상에게 화내는 사람으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지쳐서 변하면 어쩌지?
"아니라고 대답해줘."
"응?"
"안 변한다고."
"응." 혜린은 대충 대답했다. 운 기색이 사라진 얼굴로.
시철도 이어폰을 꽂고 누웠다. 화면을 열어 여러 항목 중에 '도시 백색 소음'을 골랐는데 어쩐지 그게 좀 웃겼다. 소음 속에 살면서 소음을 고르다니. 가상의 소음은 부드러웠다. 공격성이 제거된 소음이었다.
임찬복 부분은 치매에 걸린 엄마와 게임을 좋아하는 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보편적 복지와 세대갈등(청년실업)에 대한 부분을 이렇게 넌지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면접은 이제 안보니, 외출을 좀 하지 그러니, 너처럼 괜찮은 애가 왜 자리가 없을까, 그래도 네가 집에 있어서 덜 힘들었다, 고마웠다, 왜 미안한지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미안하다. 할말은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게임기 사줄까? 게임, 뭐 사줄까?"
딸이 에엥, 하는 표정으로 잠심 찬복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이제 적당히 할거예요."
찬복은 냉장고에 가서 아이스크림 두개를 꺼냈다. 딸에게 하나를 까서 입에 물려주고 뒤에서 그애가 게임하는 걸 조금 더 구경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 부분. 어쩌면 작가가 가장 힘주어 하고싶었던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미친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내 견해일 뿐이지만, 나이 들어 물렁해진 건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지요. 당사자니까, 끄트머리에 서 있으니까. 그래도 오만해지지 맙시다. 아무리 젊어도 그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데까지만 하면돼요. 후회없이.
시대란게, 세대란게 있다. 우리는 다 징검다리인 것이다.
우리는 마치 내 안에서 모든 것이 완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점이 맞다. 그러나 그 점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란 거다. 작은 점 같은 우리가 할 수 있는한 힘껏 나의 점 하나를 찍는다면, 그것들이 모여 희미한 선들로 연결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나라는 작은 존재 하나가 징검다리가 되어 또 다음 세대에게 넘겨지는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크게, 넓게 보면 나아가고 있는거라고. 아마도 작가는 50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말이 하고싶었던 것 아닐까.
책을 덮고 들었던 생각은 아 이건 정말 소설만이 할 수 있는 거구나, 였다. 어떤 형태의 콘텐츠도 50명을 모두 주인공으로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옴니버스의 옴니버스 영화여도 50명을 그릴 순 없다. 게다가 그 50명 각각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냈다가 다시 넓게 펼쳐냈다가 할 수 없다. 오로지 글이라는 형태이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희망을 말할 순 없다. 어쩌면 그 희망조차 소설이어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프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힘있게 펼쳐나가지 않더라도, 이야기는 좋다. 이런 형식도, 이런 내용도,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해준 오랜만에 너무 좋은 소설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정세랑 작가에 푹 빠져있다. 자꾸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