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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Aug 18. 2024

여름 한철, 길기도 하다




더위 하나 가지고 길게도 떠들고 있는 중이다. 나 역시 덥다 타령으로 여름 내내 끊임없이 주저리 하고 있다. 그런데 무심히 느껴지던 바람이 어쩐지 눈꼽만큼 다르다는 것에 멈칫했다. 세상은 달라졌다 복잡하다 하지만 때론 순수한 긍정을 전한다. 돌아올 때를 알고 가야 할 때를 아는 시간의 흐름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마음이랑 확실히 다르다는 걸. 마음의 기복이 심한 내가 그런 순환의 질서 속에 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덥다. 이번 폭염은 유난히 사람을 지치게 한다. 올해는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았다. 또는 두 번 가동했다... 뭐 언젠가 그랬던 적도 있었다. 시종일관 에어컨은 돌아가고 뜨거운 불볕더위 아래로 다닐 일이 무서워 집콕의 나날이다. 바깥을 다녀도 자동차로만 이동하고 그늘밑을 찾아다녔다. 분명 여름이 무섭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타오르는듯한 태양아래 아랑곳없이 누비고 다녔고 여름이 좋다고 외치던 시절이 있긴 했던 것 같다.


아직도, 여전히, 짱짱하게, 끄떡없는, 한 여름이다.



짧게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갔다. 더위가 식은 듯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여전히 후끈하다. 폭염이 도둑처럼 숨어서 도사리고 있었다.  창문에 남아있던 물방울 몇 개가 순간 말라버린다. 발코니 화분의 방울토마토에 대롱대롱 매달린 물방울은 그대로다. 예쁘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때이던가. 슬기로운 생활이라는 수업과정 중에 식물을 키우는 부분이 있었다. 체리토마토와 고추 모종 준비물을 몇 포기 사서 보냈더니 한 학기를 마치고 방학하는 날 들고 온 직사각형 화분에 빨간 토마토와 고추가 쬐끄맣게 매달려있었다. 오모나 신기하기도 하여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해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선 몇 개씩 매달린 붉은 토마토와 고추를 본다. 봄만 되면 농원에 가서 모종을 사는 일이 여느 농사꾼보다도 더 열심이다. 농사는 그닥 형편없지만 그래도 늘 몇 개씩이라도 열매를 매달아 주는 게 여간 기특한 게 아니다. 몇 포기 모종과 몇 알의 열매가 어찌나 특별한지... 하늘에 감사하는 농부의 마음도 가져보고 자연과 함께 하는 그 마음도 느껴보는 일을 하다니 고맙지 아니한가. 이 또한 내년에도 또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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