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구마’와 ‘고구마 라떼‘의 관계성
어릴 적부터 입이 좀 짧았을 뿐 채소, 과일, 고기, 해산물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기호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불호를 가리는 음식도 없다. 대부분의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편이다. 또한 새로운 음식이라면 경험하는 것도 즐긴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냄비에 ‘삶은 고구마’이다. 엄마의 종용에 마지못해 한 개 먹을 때면, ‘삶은 고구마’에 대한 맛 평가가 달라지리라는 기대는 항상 꺼졌다. 삶은 고구마는 냄새부터 구릿한 방귀 냄새가 난다. 뜨끈뜨끈 김 나는 삶은 고구마를 식히는 것도 번거롭다.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텁텁함이 입속을 차지한다. 퍼석퍼석 고구마를 씹어서 넘길 때는 목이 콱 막힌다. 우유든 물이든 꿀꺽꿀꺽 마셔서 고구마의 흔적부터 치워 버린다. 특유의 더부룩한 뒷맛도 오래도록 남아있다.
‘삶은 고구마’를 생각하면 텁텁함, 퍼석퍼석, 목 막힘, 더부룩함, 답답함, 속 터짐, 미련 같은 비슷한 성질의 단어들이 마구마구 나열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다혈질의 빨리빨리 하라고 외치는 내가 확실하게 싫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의 모음이다. 재빠르지 못할 때, 가장 먼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행동이 느린 어린 딸에게 삐쭉한 말로 재촉한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남편에게 어떤 것이든 시키고야 만다. 이런 나의 뾰족한 성미와 가장 대치되는 ‘삶은 고구마’ 그래서 내가 ‘삶은 고구마’를 싫어하나 보다.
그러나 두 가지의 모순점이 있다. 첫 번째는 나는 고구마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군고구마, 고구마 맛탕, 오븐에 구운 고구마, 고구마 빵, 고구마 라떼, 고구마 케이크도 좋아한다. 두 번째는 싫어하는 ‘삶은 고구마’로 만든 고구마 라떼는 정말 좋아하는 마음으로 본다는 것이다. 고구마를 으깨어 우유와 잘 섞은 고구마 라떼는 겨울철 특유의 달콤함과 따뜻함으로 속과 마음을 데워주는 극락의 음료로 탈바꿈한다.
단순히 싫어하는 속성의 음식에 우유를 더했을 뿐인데 좋아하는 음식으로 바뀐다는 점을 상기하니, 재미있는 원리를 재발견한 듯하다. 이 재미있는 원리처럼 싫어하는 것에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어떤 것, 잘 어울리는 것을 접목하면,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것 혹은 좋아하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세상사 원하지 않는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극복하기 위해 고구마 라떼 레시피의 원리를 활용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고구마 라떼 레시피를 이렇게 사용한다. 마감이 임박한 작업하기 싫은 그림에는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이든 꼭 집어넣는다. 귀여운 것, 취향의 패턴, 즐겨 먹는 디저트 등을 그림의 구석이든 가장자리든 집어넣고 나면 작업 자체가 조금은 즐거워진다. 별로 호감 가지 않는 사람과 만나 유쾌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배움을 통한 목적 달성을 좋아하는 나의 특성을 이용해 만남 자체를 하나의 퀘스트로 여기도록 한다. 깨야 하는 퀘스트의 목적은 ‘별로인 혹은 낯선 사람과 친해지는 스킬 배우기’ 같은 것이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누구든 해내야 하는 일이다. 귀찮거나 싫은 일을 항상 억지로,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해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무겁게 느껴질까? 조금은 쉽고, 유쾌한 방법으로 꺼리는 상황을 비켜 나가 보자. 삶의 순간들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다.
모두의 무더운 가을이 평온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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