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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Aug 27. 2024

행복의 재발견

감정의 농도

행복의 재발견; 감정의 농도


요즘은 왜 이렇게 뚜렷하게 기억나는 일이 없을까? 정해진 시간에 맞춰 보내는 규칙적인 일상이 감정 없는 인형이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따분하다’ ‘무력하다’ ‘지루하다’ 같은 문장들이 주위를 맴돌았다. 새로 시작했던 일들은 일상이 되어버렸고, 더 이상 나에게 설레는 자극을 주지 못했다.

장소를 바꾸면 이 상태가 환기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집 근처의 도서관, 카페, 내방 작업실 등 장소를 여기저기 옮겨 다녀 보지만 내 안의 물가는 잔잔하고 고요하기만 할 뿐, 바람 한 점 일으키지 못했다.


문득, ‘감정의 농도’라는 단어의 조합이 떠올랐다. 익숙한 단어지만 신선했다. 현재 내가 느끼는 상태를 감정의 농도로 표현해 본다.

지금, 지나가는 순간들은 적절한 자극이 없어 느껴지는 감정의 농도는 희미했다. 금방 휘발되어 옅은 자국만 남길 뿐 희미한 기억과 함께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음이 저릿해지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는 감정의 농도가 짙었다. ‘최대의 기쁨’이란 감정에는 ‘딸의 탄생’의 이야기가, ‘슬픔’이라는 감정에는 ‘강아지와 이별’이라는 이야기가, ‘행복한 설렘’이라는 감정에는 ‘배낭여행 도전’이라는 이야기가 진하게 녹아서 남아있었다. 진지하게 모두 떠올려보니, 그 선명한 순간들을 인생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를 소담하게 써 내려간 듯하다.


아마 나는 지금, 이 순간들이 무미건조하게, 인생의 한 페이지에도 쓰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 못내 아쉽고, 씁쓸하다 여기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과 지금, 감정의 농도를 진하게 녹여내고 싶다. 한숨 고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지난 주말, 처음으로 6살 딸아이와 극장을 갔다. 요즘 아이들의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영화 ‘사랑의 하츄핑’을 보고 펑펑 울며 오열하는 6살 아이의 슬픈 눈망울이 먼저 보였다. 슬픔으로 반짝이는 아이의 눈동자. 슬픈 것을 보고, 무감각한 것이 아니라 깊게 슬퍼하는 아이의 모습이 참으로 해맑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어제의 월요일, 동화 삽화의 러프스케치를 끝내고, 구체적으로 채색을 위한 스케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익숙해서 편하기만 했다. 처음 삽화 외주를 받았을 때의 설렘, 쩔쩔매며 걱정과 한숨이 가득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걱정의 무게를 딛고, 완성했을 때의 그 쾌감도 함께 느껴졌다. 다시 시작점에 서서 이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 뛰고, 기쁜 일이었을까를 상기시켰다.


돌이켜보면서, 스쳐 지나갔던 감정들을 깊숙이 되새겨본다. 그리고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순간에 더 눈길을 두어본다.


오늘 아침 아이와 등원 길, 매달리듯 잡는 그 작은 손의 힘이 내 손을 꼭 동여맨다. 단단히 내 손을 잡을 만큼 많이 컸구나! 우리 딸 뭉클함이 베어난다.


땀으로 절어 돌아온 집에서 급하게 선풍기를 켰다. 누워서 눈을 감고, 식는 더위의 상태를 감각으로 느꼈다. 아 시원하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 순간!



진짜 사소하고 무용한 나의 일상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니, 느껴지는 나의 감정과 깊이는 다르지만 ‘감정 농도’의 리듬이 있었다.


이 흔적의 리듬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항상 진하게 자국을 남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생이라는 책 페이지의 작은 흔적이라도 남겼다.

살아간다고 느끼다가도, 와 정말 살아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무미건조한 건 내 일상이 아니라, 무심히 지나가 버린 내 마음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살뜰히 느껴주기!



모두의 무더운 여름이 평온하기를 바라며.

namee(@nanamee_studio) •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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