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마을 축제

[Day 4-2] 강테 축제 (Gangtey Tsechu)

by 시에

포브지카 계곡 하이킹의 종착점인 강테 사원(Gangtey Gompa)이 가까워질수록 축제 생각이 커진다. 남걀은 이미 재밌게 놀고 있을 거라고. 도마도 빨리 가고 싶은 듯한 눈치다. 언덕의 끝에 다다르자 간이 천막의 지붕이 보였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정말 축제구나.


드디어 400년의 역사를 가진 강테 사원(Gangtey Gompa)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비가 지나갔는지 무지개가 걸려있었다. '강테'는 ‘언덕 위’를 의미하는 ‘강텡’에서 따온 이름이다. 특이하게 포브지카 계곡에는 죵이 없고, 대신 강테 사원이 죵의 구조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죵이나 사원이 그렇듯 강테 사원에도 전설이 있다. 부탄에 불교를 처음 전한 파드마삼바바가 불교의 비전을 담은 보물을 숨겨두었는데, 그 보물을 찾은 ‘페마링파’가 예언을 한다. 미래에 ‘강텡’이라는 사람이 포브지카 계곡에 와서 불법을 전할 거라고. 이후 비슷한 발음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원을 세웠는데, 알고 보니 그는 페마링파의 환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환생하여 사원을 확장했다고.



강테 축제(Gangtey Tsechu) 또한 여러 가지 공연이 열리고 관객들은 소풍을 나온 듯 축제를 즐긴다. 그런데 팀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비가 와서 질척해진 길 위를 꿋꿋하게 걸어온 하이힐 여성이나 붉은 천을 두른 승려가 무대 바깥에 둘러앉아 있는 것은 비슷했는데, 좀 더 아기자기한 느낌이랄까. 공간의 차이도 있겠지만, 시골 마을 특유의 분위기가 한 몫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팀부 축제도 좋았지만, 어쩐지 소박하고 친근한 인상의 강테 축제가 더 마음에 닿았다.



물론 공연은 매우 화려하고 역동적이었다. 오늘도 ‘아차라(Atsara)’는 군중을 휘젓고 지나갔다. 사례를 한 관객의 머리 근처에서 물결치듯 천을 흔들며 복을 전해준다. 우연히 내 눈앞에서 움직이는 바람에 천이 카메라에 걸려서 빼내느라 한참을 버둥거렸다. 여행자의 선글라스를 집어 들었다가 주인을 잊었는지 두리번대는 어리바리함까지. 웃음도 행운도 주네. 도마에게 재이도 돈을 내고 복을 받았다고 했더니 잘했다며 깔깔 웃는다.



강테 사원에서 내려가는 길의 양 옆으로 작은 상점을 볼 수 있었다. 과일이나 채소를 비롯한 식품과 생활용품, 장난감 등이 눈에 띄었다. 어렸을 때 비슷한 가게에 들락거린 기억이 난다. 지금은 대부분 편의점으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우리의 도마가 즐겨먹는다는 '도마(Doma)'를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속을 따뜻하게 해줘서 겨울철에 많이 먹는다고.

영화 'Udumbara(우담바라)' 포스터


우리 돈으로 400원 정도 되려나. 비닐봉지 안에는 껍질을 미처 다 깎지 못한 밤처럼 생긴 둥근 열매(Areca Nut)와 초록색 둥근 나뭇잎(Betel Leaf)이 서너 세트 들어있었다. 접힌 이파리를 펴 보면 물감처럼 질척한 핑크빛 액체(Lime, 석회)가 묻어있다. 그대로 먹으면 너무 힘들 거라고 해서 석회를 아주 조금만 남기고 덜어냈다. 다시 잎을 접고, 열매와 함께 와그작 하고 씹어 먹으면 된다.


석회를 덜어내서 원래보단 약할 텐데 재이는 약간 역하고 머리가 띵하다고 했다. 나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문제는 열매였다. 들깻가루처럼 입안 구석구석에 들러붙어서 텁텁한 게 고역이었다. 맛은 딱히 단짠이 아니어서 혀가 둔한 나로서는 적절히 묘사할 수가 없다. 물로 입안을 헹궈서 삼킬까 했더니 후회할 거라고. 실제로 그는 매번 도마를 씹은 후에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지옥을 맛보고 싶지 않은 재이와 나도 꾹 참고 끝까지 씹었다.


그는 도마(Doma)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래 부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인육을 먹었다고 한다. 파드마삼바바가 찾아와 불교를 전하고, 도마를 먹게 하여 사람들을 각성시켰다고. 잎은 몸, 열매는 뼈, 석회는 뇌, 다 같이 씹어서 나오는 붉은 침은 피를 의미한다고 했다.


스토리는 다르지만 ‘아담과 이브’와 유사한 형태의 상징인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서로를 잡아먹지 않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물론 이 시대에는 직접적으로 식인을 하지 않을 뿐, 돈으로 서로를 잡아먹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런데 근래 들어 도마(Doma)가 중독성이 있고, 위염과 암을 유발하는 성분이 있어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리의 가이드 도마도 적당히 먹어야 할 텐데.



팀부와 마찬가지로 사원 근처에서 푸른 천막이 늘어선 시장이 열렸고, 사람들은 질척한 흙길을 넘나들며 쇼핑을 했다. 재이는 대바구니 모양의 둥근 함에 꽂혔다. 도시락 통으로 쓴다고 했다. 그 안에 밥을 담아가는데, 그대로 손에 들고 밥 위에 반찬을 올려 먹는다고 했다. 대바구니 두 개를 마주 보게 포갠 듯한 모양이었다. 현재 녀석은 한국땅에서 컴퓨터 액세서리를 담는데 쓰인다.



축제 현장에 먼저 와 있다던 남걀은 그 많은 천막 중 게임을 하는 곳에 있었다. 역시 축제에는 행운을 기대하는 게임이 빠질 수 없지. 무척 즐거운 듯하여 물었더니 해맑게 웃으며 재밌다고. 사람들은 다트 게임으로 돈을 따는 천막으로 몰려들었다. 그 어느 곳보다 시끌시끌하다. 행운을 바라는 사람의 마음과 호객꾼의 영업 스타일은 다들 비슷한 건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포브지카 계곡에서의 짧은 일정이 끝났다. 며칠 더 머물면서 즐기고 싶지만 언제나 타협이 필요한 일정. 여행도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의 개념을 절절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다. 한 곳을 즐기려면 다른 한 곳은 포기해야 한다. 이제 서쪽으로 다시 두 시간쯤 달려 관광객의 필수코스인 푸나카(Punakha)로 간다. 물론 돌떠러지와 낭떠러지가 가득한 비포장도로 위를 출렁이면서.



이전 08화느리게 걷다